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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의 불이 켜지고, 관객들도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마지막 자막이 뜬다. ‘번역 이미도’일 가능성이 높다. 영화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번역 조상구’나 ‘번역 강민하’라는 자막도 기억할지 모르겠다. 스크린 오른쪽의 세로 자막 두 줄을 만드는 외화번역가. 외국영화에 맛깔스런 우리말을 덧입히는 사람들이다.
외화번역은 영화 속 대사를 그대로 우리말로 옮기는 일이 절대 아니다. ‘압축’과 ‘변형’이 필수다. 내용을 확실히 전달하면서도 관객의 몰입을 방해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자막은 최대한 간략해야 한다. 관객이 1초간 받아들일 수 있는 글자는 평균 4자. 보통 세로 두 줄, 띄어쓰기와 부호를 포함해 한 줄에 8자가 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볼 수 있다’가 띄어쓰기를 무시한 채 ‘볼수있다’로, ‘그러나’가 ‘허나’로 표기되는 것도 그런 이유. 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겨 자막을 만들어내는 영화번역은 그래서 또다른 ‘창작’이다. 같은 영화라도 번역가에 따라 전혀 다른 작품으로 재탄생한다.
국내에 개봉한 흥행작의 80% 이상을 담당하는 이미도씨는 널리 알려진 스타 번역가. 1993년 ‘블루’를 시작으로 ‘와호장룡’ ‘글래디에이터’ ‘뷰티풀 마인드’ ‘반지의 제왕’ 등을 번역했다. 한 달에 평균 3편, 편당 작업시간은 1주일. 지금까지 400여편의 외화가 그의 손을 거쳤다. 엔딩 장면에 번역가의 이름을 넣도록 만든 사람도 그다.
SBS ‘야인시대’에서 시라소니로 열연중인 조상구씨 또한 90년대를 풍미한 영화번역가. ‘레옹’ ‘타이타닉’ ‘맨인블랙’ ‘피아니스트’ 등을 번역했다. 무명시절 아르바이트 삼아 시작한 번역일이었지만, 연기를 해 본 사람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실감나는 자막으로 이름을 날렸다.
외화번역가가 되기 위해서는 수준급의 외국어 실력은 기본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말을 맛깔스럽게 사용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원래 대본에서 불필요한 부분은 과감하게 삭제하고 최대한 간결하게 우리말로 옮겨야 한다. 우리와 정서가 다른 외국어 농담이나 속담을 옮기기 위해서도 언어감각은 필수적이다.
곤충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 ‘벅스 라이프’에서 “It’s tough to be a bug(곤충 노릇은 힘들어)”를 “곤충의 고충, 너희는 몰라”로 옮긴 것이 좋은 예다. ‘터프’(tough)와 ‘버그’(bug)의 음감을 살리기 위해서 ‘곤충’과 ‘고충’으로 운을 맞췄다. 개봉 예정인 일본영화 ‘고양이의 보은’에서 고양이 대사 끝에 ‘~야옹’을 붙인 것도 재미있는 번역. ‘밥 먹었냐’ 대신 ‘밥 먹었냐옹’으로 고양이 콧소리가 섞인 원판의 어감을 살렸다. 속담, 최신 유행어, 문화관련 지식도 도움이 된다.
전문분야를 다룬 영화를 번역할 때는 그 분야의 전문가 못지않은 지식이 필수적이다. 지난해 개봉한 ‘기묘한 이야기’를 번역한 강민하씨는 인간 체스판 이야기 때문에 체스 규칙·전문용어·한국어 용어까지 고루 공부해야 했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전문용어를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원작의 느낌을 살려 가장 이해하기 쉽도록 자막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한 해에 수백편의 외화가 수입되지만 대부분 전업 영화번역가 몇 명이 맡고 있다. 영어권의 경우에는 이미도·조상구·김은주씨 등 10명이, 일본어권은 강민하씨 등 2~3명이 맡는다. 보수는 편당 1백50만원 이상. 영화사 쪽에서 경험이 많은 전문가를 선호하기 때문에 일은 대부분 인맥을 통해 이루어진다.
외화번역가가 되는 공식적인 등용문은 없다. 한국번역가협회(02-725-0506)에서 번역능력인증시험을 실시하고 있고, 서강대 방송아카데미와 SBS 방송아카데미에 영상번역과정이 개설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 활동하고 있는 영화번역가 가운데 전문적인 자격증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강민하씨는 “실무 경험을 쌓아 인정받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며 “대형 영화제 때 자원봉사 자막번역팀이 꾸려지는데,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최명애기자 glaukus@kyunghyang.com/
외화번역은 영화 속 대사를 그대로 우리말로 옮기는 일이 절대 아니다. ‘압축’과 ‘변형’이 필수다. 내용을 확실히 전달하면서도 관객의 몰입을 방해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자막은 최대한 간략해야 한다. 관객이 1초간 받아들일 수 있는 글자는 평균 4자. 보통 세로 두 줄, 띄어쓰기와 부호를 포함해 한 줄에 8자가 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볼 수 있다’가 띄어쓰기를 무시한 채 ‘볼수있다’로, ‘그러나’가 ‘허나’로 표기되는 것도 그런 이유. 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겨 자막을 만들어내는 영화번역은 그래서 또다른 ‘창작’이다. 같은 영화라도 번역가에 따라 전혀 다른 작품으로 재탄생한다.
국내에 개봉한 흥행작의 80% 이상을 담당하는 이미도씨는 널리 알려진 스타 번역가. 1993년 ‘블루’를 시작으로 ‘와호장룡’ ‘글래디에이터’ ‘뷰티풀 마인드’ ‘반지의 제왕’ 등을 번역했다. 한 달에 평균 3편, 편당 작업시간은 1주일. 지금까지 400여편의 외화가 그의 손을 거쳤다. 엔딩 장면에 번역가의 이름을 넣도록 만든 사람도 그다.
SBS ‘야인시대’에서 시라소니로 열연중인 조상구씨 또한 90년대를 풍미한 영화번역가. ‘레옹’ ‘타이타닉’ ‘맨인블랙’ ‘피아니스트’ 등을 번역했다. 무명시절 아르바이트 삼아 시작한 번역일이었지만, 연기를 해 본 사람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실감나는 자막으로 이름을 날렸다.
외화번역가가 되기 위해서는 수준급의 외국어 실력은 기본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말을 맛깔스럽게 사용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원래 대본에서 불필요한 부분은 과감하게 삭제하고 최대한 간결하게 우리말로 옮겨야 한다. 우리와 정서가 다른 외국어 농담이나 속담을 옮기기 위해서도 언어감각은 필수적이다.
곤충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 ‘벅스 라이프’에서 “It’s tough to be a bug(곤충 노릇은 힘들어)”를 “곤충의 고충, 너희는 몰라”로 옮긴 것이 좋은 예다. ‘터프’(tough)와 ‘버그’(bug)의 음감을 살리기 위해서 ‘곤충’과 ‘고충’으로 운을 맞췄다. 개봉 예정인 일본영화 ‘고양이의 보은’에서 고양이 대사 끝에 ‘~야옹’을 붙인 것도 재미있는 번역. ‘밥 먹었냐’ 대신 ‘밥 먹었냐옹’으로 고양이 콧소리가 섞인 원판의 어감을 살렸다. 속담, 최신 유행어, 문화관련 지식도 도움이 된다.
전문분야를 다룬 영화를 번역할 때는 그 분야의 전문가 못지않은 지식이 필수적이다. 지난해 개봉한 ‘기묘한 이야기’를 번역한 강민하씨는 인간 체스판 이야기 때문에 체스 규칙·전문용어·한국어 용어까지 고루 공부해야 했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전문용어를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원작의 느낌을 살려 가장 이해하기 쉽도록 자막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한 해에 수백편의 외화가 수입되지만 대부분 전업 영화번역가 몇 명이 맡고 있다. 영어권의 경우에는 이미도·조상구·김은주씨 등 10명이, 일본어권은 강민하씨 등 2~3명이 맡는다. 보수는 편당 1백50만원 이상. 영화사 쪽에서 경험이 많은 전문가를 선호하기 때문에 일은 대부분 인맥을 통해 이루어진다.
외화번역가가 되는 공식적인 등용문은 없다. 한국번역가협회(02-725-0506)에서 번역능력인증시험을 실시하고 있고, 서강대 방송아카데미와 SBS 방송아카데미에 영상번역과정이 개설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 활동하고 있는 영화번역가 가운데 전문적인 자격증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강민하씨는 “실무 경험을 쌓아 인정받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며 “대형 영화제 때 자원봉사 자막번역팀이 꾸려지는데,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최명애기자 glaukus@kyunghyang.com/
출처 : 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306251616261&code=90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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