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욱기자 thoth@hk.co.kr
“좋은 번역을 하려면 문장에 대한 사랑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말을 먼저 만들고 거기 얽매여서는 오역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나를 비우는 정신적인 수양이 먼저 필요합니다. 그리고 번역의 일은 생각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임을 스스로 인정하길 바랍니다."(황현산교수)
"교수님은 번역을 용각산에 비유하셨습니다. 이 소리도 아닙니다. 저 소리도 아닙니다. 주어진 소리를 부정하다 보면 참된 이미지가 얻어진다는 걸 그렇게 표현하셨죠."(권혁웅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
우리 문학 비평ㆍ번역의 큰 산, 황현산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가 두 달 뒤면 정년퇴임이다. 그에게서 받은 문학적ㆍ시적 세례의 은혜와 퇴임의 아쉬움에 한국번역비평학회와 후학들이 25일 고려대에서 멋진 자리를 마련했다. '번역-비평, 그리고 시'라는 주제로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기념 심포지엄을 연 것이다. 동료와 후배, 제자들로 북적이는 행사장 한 자리를 맡아 앉아 황 교수는 발표 내용을 경청하다가도, 이따금 일어나 일없이 복도를 서성이기도 했다. 그는 "자리가 불편해서"라며 민망해했다. "칭찬 일변도의 발표라 어색해요. 하지만 내가 아니라 시와 번역이 가지고 있는 오묘함에 바치는 오마주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제자인 권혁웅 교수는 "황현산만큼 텍스트를 풍요롭게 해명하는 이는 많지 않다. 그의 말은 단순한 언어가 아닌 현실이며, 그가 즐겨 사용하는 '깊이'의 단어는 다른 차원을 숨기고 있는 3차원의 언어"라고 말했다. 권 교수는 이어 "부정과 부정을 통해 도달하는 순결함과 무한한 언어를 추구했던 비평가"라고 스승의 비평 세계를 평했다.
폐회사 형식의 답사에서 황 교수는 "나는 시의 비평과 번역, 그리고 번역의 비평을 한 평생 해왔다"며 "시 번역은 생각보다 참 복잡하고, 언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비밀을 꿰뚫는 고난의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시 번역이 작가의 비밀스런 영역을 엿보는 정신적 영역이라는 의미였다. 그는 끝으로 후배들을 향한 따뜻한 조언을 덧붙였다. 위에서 인용한 저 말, 곧 문장에 대한 사랑과 수양의 중요성, 그리고 번역의 가치에 대한 새삼스러운 일깨움이었다.
황 교수는 고려대 문과대 및 불문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경남대학교와 강원대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불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아폴리네르>(파스칼 피아), <19세기 프랑스 문학>(도미니크 랭세, 공역), <19세기 프랑스시>(도미니크 랭세, 공역)의 번역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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