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영상물 검열위] 영상물 오역 실태! <매트릭스>편
2001.6.12.화요일
딴지 영진공
당위 하나 알려주겠다. 번역은 창작이다.
그 정도는 아니라고? 너 번역 한 번 해봐. 독해말고 번역. 글구 선진국에선 예술가랑 번역사랑 같은 카테고리로 묶는다. 믿거나 말거나 번역은 창작이라는 사실엔 변함없다. 그리고 창작은... 조또 안 쉽다.
본인, 어렸을 때부터 영화 졸라 좋아했다. 그래서 지금은 안 세지만 얼마 전까지 내가 본 영화편수를 세었을 땐 3천편이 넘고 있었다.
그리고 본인, 어렸을 때부터 영어도 좋아했다. 유치원도 가기 전에 아부지한테 영어 조기교육 받았고 외국경험도 쪼까 해서 공부 안 해도 점수가 잘 나오니까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됐다. 그래서 대학도 영문과로 갔다. 우쨌거나.....
이렇게 영어랑 영화 좋아하는 넘이 맨날 비됴를 보면서 가끔 가슴 답답함을 못 참아 흐느낄 때가 있었느니... 그래, 나랑 비슷했던 독자들은 벌써 눈치까고 있는 거 보인다. 날 흐느끼게 만든 건 바로 메주 담가서 땅콩빠다를 만들려는 식의 황당무개 천인공노 자막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세월은 흐르고 흘러 본인 시나리오 딸딸이 공부와 우리말 마스터베이션 스터디로 내공을 키워 이런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이 한 목숨, 대한민국 명랑영상번역문화 정착에 바친들 뭣이 아까운 게 있으랴!
그래서 이렇게 첫 펜을 들었다. 흠집 없는 번역으로 꽉 찬 영상물이 줄줄이 그대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길 바라며. 자, 두둥...
명랑영상문화 정착을 위해 디비고 넘어갈 건 참 많겠으나 본인 일단 가장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오역에 대해 쪼까 디벼보려고 한다.
그러니 이 보고서를 읽고 현재 영상번역에 종사하고 있는 내 동료들은 다시는 이런 실수를 저지르지 말아야겠으며 돈 졸라 못 버는 영상번역사를 꿈꾸는 몇몇 그대들 역시 이런 실수를 저지르는 만행을 반복해선 안 된다 하겠다.
비됴는 요즘 영화 중에서 많이들 봤을 법한 영화로 골랐다. 90년대 초반 이전에 나온 비됴에는 짚고 넘어갈 게 너무 많고 요즘 나온 영화라도 좀 봐줄만한 영화를 해야하지 않겠어?
그리고 우리말 용법까지 다 디벼버리면 비됴 한 편으로도 기사 하나갖곤 모자를 것 같으니 큼지막한 오역들만 예로 들었다. (사실 맘 같아선 우리말 용법까지 다 디벼버리고 싶다만 다 디벼버리면 독자여러분 티뷔 뉘우스나 매일 아침 빤스내리고 앉아서 읽는 커다란 종이가 잘못된 우리말 표현으로 만발해 있다는 것을 알고 충격 몇 스푼 먹을 것이다)
서론 길었다. 들어가보자. 오늘의 비됴는 <메이트뤽스 (Matrix)>다.
오역 사례 NO 1 |
영화 초반에 경위급 경찰관이 요원에게 하는 말이다. I sent two units. Theyre bringing her down. 번역: 두 명을 보냈으니 곧 잡아올 거요. |
이런 번역은 번역실력에 상관없이 저지르는 무성의 번역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unit에 해당하는 우리나라 말이 없다고 해도 Trinity 잡으러 들어가는 넘들이 세 넘 이상 보이는데 무슨 배짱으로 두 명이라고 번역해버렸는지 완존 똥배짱이다.
정 대본에 있는 two라는 숫자를 살리고 싶었으면 두 팀을 보냈으니...라고 하던지 그 경위의 태도에 알맞을 표현인 알아서 보냈으니...라고 해도 됐을 것이다.
오역 사례 NO 2 |
Morpheus가 Neo에게 비행정의 구조를 설명하는 부분. This is main deck. This is the core. 번역: 여긴 주갑판이고 여기가 코어야. |
역시 무성의 번역이라 할 수 있다. 첫 문장에서의 This is는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고 두 번 째 문장에서의 This is는 사물을 가리키는 것임을 화면만 보고 있어도 안다. 언제부터 사물을 가리킬 때 여기라는 표현을 썼는가.
오역 사례 NO 3 |
조금 건너 뛰어서, Morpheus가 하는 말 It exists now only as a part of a neural-interactive simulation that we call the Matrix. 번역: 이젠 신경 상호작용 시뮬레이션의 일부인 매트릭스만 존재하지. |
시뮬레이션... 요즘엔 거의 외래어처럼 잘 쓰이는 표현이다. 그런데 문제는 영어에서 simulation이라고 했다고 번역도 언제나 시뮬레이션으로 해도 되는 게 아니란 것이다. 시뮬레이션 게임하면 얼추 알아듣지만 신경 상호작용 시뮬레이션은 누가 알아듣나? 좀 시청자를 생각하란 말이다! simulation이란 단어는 가상, 모의와 비슷한 뜻이니 이젠 가짜 신경 상호작용의 일부인...으로 번역해주면 그래도 얼추 알아들을만 하잖아? 매트릭스는 가짜세계니까 말이야.
그리고 이 대사 전에 training simulation도 훈련 시뮬레이션이라고 번역해 놓았는데 그냥 가상훈련, 모의 훈련이라고 하면 좋잖아?
왜 그렇게 영어를 쉽게 쓰는 거야? 우리말이 그렇게 싫어?
매트릭스 번역한 인간, 번역사로서 절대 귀찮아하지 말아야할 사전 디비기를 조또 귀찮아하고 있는 인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뇬넘들이 잘도 뻐팅길 수 있는 곳이 영상번역휠드다. 왜 그러냐고? 이따가 얘기해주께.
오역 사례 NO 4 |
계속해서 Mropheus 대사다. When the Matrix was first built there was a man born inside who had the ability to change whatever he wanted to remake the Matrix as he saw fit. 번역: 매트릭스가 건설될 때 안에서 태어난 자가 있었지. 그는 원하는 바를 바꿀 수 있었어. 매트릭스를 합당하게 바꾸는 거였지. |
어디가 잘못됐는지 맞춰보시라. 모르겠으면 영어공부만 하지 말고 국어공부도 좀 해라. 원하는 바는 조또 갓난아기도 바꿀 수 있다. 원하는 바라는 것은 뤼앨러티가 아니라 이매지네이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최소한 그는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었어정도 수준의 직역이라도 나와야지... 장난하나...
오역 사례 NO 5 |
훈련은 앞둔 Neo에게 Tank가 하는 말 Im Tank. Ill be your operator. 번역: 내가 널 조작할 거야. |
니미... 지금 컴퓨터랑 얘기하나? 아니면 Neo가 갑자기 피노키오로 변했나...
이건 영한사전에 나온 우리말을 바로 번역문장에
궈넣어버리는우리나라 영상번역휠드의 가장 대표적 만행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일본의 영어사전 그대로 베낀 울나라 영한사전에도 문제가 있긴 하다만 그 얘긴 나중에 하고. 네 훈련을 도와줄 거야 혹은 네 훈련은 내 담당이야 등 이렇게 하면 되잖아?
오역 사례 NO 6 |
Morpheus가 Neo와 sparing program에서 결투를 벌이다가 하는 말이다.(번역자는 sparing program도 그냥 스파링 프로그램으로 옮겼다. 대전 프로그램, 결투 프로그램으로 하면 얼마나 좋아?) What are you waiting for? Youre faster than this 번역: 뭘 기다려? 빨라졌는데 |
빨라졌다면 뭘 기다리냐고 왜 물어보나... 떠 빨라질 수 있는데 머뭇거리고 있으니까 뭘 기다리냐고 하는 거 아닌가. 이건 그냥 흐름만 타도 제대로 될 부분이다. 이 번역자, 여기선 직역도 안 하고 대충 비슷한 말로 바꿔버리는 역시 대한민국 영상번역휠드에 팽배해있는 만행과 번역의 흐름은 타지 않고 한 문장 한 문장 따로 번역을 하는, 역시 이 휠드에서 흔한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모범 번역 예로 더 빠를 수 있잖아!, 왜 그래? 더 빠르잖아!가 되겠다. 코쟁이들이 자주 쓰는 표현 What are you waiting for? 일일이 안 풀어줘도 뜻 통한다.
오역 사례 NO 7 |
Oracle이 꽃병을 깨뜨린 Neo에게 하는 말. Ill get one of my kids to fix it 번역: 애들보고 고치라고 할게. |
그러니까 Oracle네 부엌에 있는 꽃병은 무슨 가전제품이다 이거지. 고장도 나고 고치기도 하고. 조또... 역시 영한사전에 나온 단어 아무 생각 없이 낑궈넣어버리는 만행이라 할 수 있다. 이러다가 남의 집에 가서 꽃병 깨뜨리고 고쳐주면 되잖아!라고 한 마디 던져주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모범답안은 초딩도 알겠으니 생략한다.
오역 사례 NO 8 |
다시 Oracle아줌마가 Neo에게 하는 말이다. Being the One is just like being loved 번역: 그라는 존재는 사랑에 빠지는 것과 같아 |
being loved가 사랑에 빠지는 것이라고 쳐도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뭔가 대칭이 안 되는 대칼코마니 같지 않은가?
비교설명을 위해 젖꼭지를 츄파춥스에 비유하는 예를 들겠다. 보통 다음 두 가지 문장이 나올 수 있겠다. 츄파춥스를 빨 땐 마치 젖꼭지를 빠는 것 같아 혹은 츄파춥스는 마치 젖꼭지 같아 그런데 위 번역문은 마치 이런 문장과 같은 경우다. 츄파춥스는 젖꼭지를 빠는 것과 같아... 뭔 말이여... 이거 자막 읽는 게 꼭 외국어 독해하는 기분이니 비됴 볼 맛이 나겠는가.
그가 된다는 건 사랑을 받는 것과 같아라고 하면 되겠다. 쉬운 말 쉽게 하고 어려운 말 쉽게 하는 게 잘하는 번역이다. 최소한 영상번역에선.
오역 사례 NO 9 |
Matrix의 마지막 예다. 이 울트라 진국 마스터피스 필름에 오역이 사방에 포진하고 있으니 어디 이 영화의 맛을 제대로 느끼겠는가. 최소한 우리나라 말로도 이상한 번역은 나오지 말아야 할진데 마지막 예 역시 같은 경우다. Smith 요원이 Morpheus를 잡아놓고 하는 얘기다. 먼저 이런 얘기를 풀어놓은 다음, You move to an area and you multiply. And multiply until every natural resource is consumed. The only way you can survive is to spread to another area. Theres another organism on this planet that follows the same pattern. 번역: 지구상에는 똑같은 방식의 유기체가 있어. |
이정도 되면 우리나라에서 비됴를 본다는 건 노동이라 할 수 있다. 어린 시절에 본 영화들 중 얼마나 많을 것들을 엉터리 번역으로 인해 놓쳤을지 생각하면 화가 날 지경이다.
위 예문에서 pattern이란 Smith 요원이 바로 앞에 풀어놓은 인간의 생존방식을 말한다. 그러니까 지구상의 어떤 유기체도 같은 방식(pattern)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유기체의 방식이 아니라 말이다. 유기체에 무슨 방식이 있나? 이런 의문문 자체가 이상해 보인다. 슬픈 일이다. 우리말 어디로 가고 있나...
모범 번역 예: 지구에는 똑같은 방식으로 사는 유기체가 있지 혹은 글자수가 문제가 되면 그냥 지구상에는 너희와 비슷한 유기체가 있지정도.
이렇게 단어 하나하나 조또 친절하게 옮겨주다가 결국 지도 뭔 말인지 모르게 우리말로 옮겨버리니 도대체 영상번역휠드를 번역휠드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메이트뤽스> 오역은 여기까지 디비겠다. 그리고, 아까 얘기한대로 어떻게 해서 삐리리한 번역가들이 이 휠드에서 살아남는지 잠시 디벼주고 이번 기사 마치도록 하마.
우리나라 영상번역마케트, 졸라 넓다. 따져봐라. 한달에 출시되는 비됴 편수에 쓰잘떼기 없이 조또 많은 케이블채널, 그리고 이젠 DVD출시 편수도 비됴랑 맞먹게 될 것이다.(티비랑 극장영화번역은 소수가 장악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친구들이 특출한 건 아니다. 시장이 닫혀있을 뿐이다.)
본인 역시 티비랑 극장영화 빼고 다 해봤다. 하지만 번역료가 졸라 짜다. 나 디비디 한 편 번역하면서 10만원 받은 적도 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짜냐고? 이 휠드의 유통구조가 이렇거덩.
1. 비됴 출시회사나 케이블 채널에서 번역하청업체를 선정한다. 당근빠따 싸게 먹힐 곳을 고른다. 2. 가격경쟁에서 이긴 하청업체는 번역할 사람들, 일명 그 이름도 아름다운 프리랜서를 찾아 일을 맡긴다. 3. 프리랜서가 번역을 해오면 하청업체에서 손을 본 후에 혹은 바로 자막 or 더빙작업에 들어간다. |
얼추 이런 순서를 거치면서 1번에서 이미 자체비용삭감을 하고 2번에서 또 하청업체가 먹을 돈 떼고 프리랜서에게 번역료를 주니 짤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번역료는 잘 해도 거기서 거기, 못해도 거기서 거기다. 왜냐, 잘 해도 돈을 많이 줄 수가 없으니까. 이렇다보니 혈기왕성하고 실력을 겸비한 젊은 넘뇬들은 잠시 이 휠드를 기웃거리다가 말거나 아님 애초에 돈 못 번다는 소문이 무성하기 때문에 발디딜 생각도 안 한다.
당연하다. 나도 장가갈 생각했으면 진작 그만뒀다. 시장은 넓지, 실력파 젊은이들은 작업에 투입이 안 되지... 그러다보니 아줌마들이 대거 영입된다. 나도 일하면서 넘은 거의 못 봤고 젊은 뇬도 몇 명 못 봤다. 물론 이 아줌마들이 아무 아줌마는 아니다. 영어는 좀 하는 아줌마들이다.
버뜨!! 번역은 영어로 하는 게 아니다.(여기서 한 마디만. 젊은 뇬 중에도 번역에 번자도 모르는 뇬이 있고 아줌마 중에도 멋지게 번역하는 아줌마 있다) 그러니까 여기서 문제는 아줌마들이 시장에 많다는 것보다는 아줌마든 젊은 넘뇬이든 번역교육을 제대로 받고 이 휠드에 뛰어드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줌마일 경우 집에서 짬내서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일에 혼혈을 기울이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나같은 남편 만나지 않는 이상.
그리고 금전적 대가가 혼혈을 기울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에, 번역에 대한 사명감을 갖고 있지 않는 이상 작업을 진지하게 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영상번역이 용돈벌이 정도의 가치밖에 없단 말이냐?
그렇다면 번역교육기관이 있긴 있는가? 있긴 있지만 거품 쫙 빼고 제대로 가르치는 곳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즉, 인력 수요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그리고 여기 나온 사람도 돈 때문에 영상번역 안 한다. 그러니까 용돈정도 벌려는 아줌마들이 용돈정도 가치의 번역을 하고 하청업체는 용돈정도 번역료를 주는 것이다.
이처럼 번역이라는 아트에 임하는 아리스트들이 용돈벌이 정신으로 작업에 임하는 데 좋은 번역이 나올 수 있겠냐 말이다. 그리고 그런 번역을 보고있는 우리덜은 원작의 필을 그대로 살려 받아들일 수 있겠냐 말이다.
그저 후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밀려나오는 한숨만 내쉬게 될 따름이다. 하~
오늘은 여기까지. 아쉽더라도 쪼매만 참아라. 곧 투 비 컨티뉴드 되겠다. 아울러 오역디비기도 계속된다. 기둘리시라.
딴지 영진공
특수영상물 영상물 번역 분과장
진황이
(hanwoon017@hanmail.net)
'번역생각(반면교사 혹은 타산지석) > (펌/ 편집) 영화번역업계 까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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