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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프리랜서 되기

잔인한 詩 2010. 8. 30.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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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프리랜서,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지?' 번역을 시작하려고 하거나 번역공부를 해보려고 하는 사람들이라면 대개 한 두 번쯤 이런 생각을 해 보았을 것이다. 실제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도 그런 것이었다. 이외에도 번역에 발을 들여놓으려고 하는 사람에게 궁금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번역 프리랜서로 시작하는 길을 안내하는 것으로 그치고자 한다. 물론 번역 프리랜서로 시작하기 전에 거쳐야 할 단계와 준비가 있지만 여기서는 이러한 준비가 이미 끝난 것으로 전제하고 논의를 시작하고자 한다.

프리랜서로서 준비가 다 끝났다 하더라고 누가 자기를 불러주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니 길을 모르는 사람에겐 정말 어디서부터 길을 뚫어야 할지 막막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문제를 구체적으로 접근해 보면 길이 조금씩 보인다. 우선 번역을 직업적으로 한다고 할 때에는 번역의 결과물을 상품으로 내 놓는 것이다. 
그러면 번역이라는 상품을 필요로 하는 곳을 생각해 볼 수 있고, 그런 곳이면 번역가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제 그런 곳을 찾아 문을 두드려야 한다. 앉아서 기회가 저절로 오기를 기다릴 수는 없다.

이제 막 번역을 시작한 사람을 누가 알아서 찾아와 일을 부탁하겠는가! 자기를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 적극적으로 자신을 알리고 스스로 일할 기회를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찾아가서 자기를 알릴 수 있는 기관들로는 다음과 같은 곳이 있다.

 

(1) 번역회사

가장 1차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곳이다. 번역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니 당연히 번역가를 언제나 필요로 한다. 상근 번역가를 뽑는 곳도 있지만 극히 적은 수이고 대부분이 프리랜서를 항시 모집한다. 번역분야는 인문 사회과학에서부터 과학기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전화번호부 업종편에서 번역란을 찾아보면 200여개의 크고 작은 번역회사의 광고문과 전화번호가 나와 있다. 이중에 한 줄로 소개되어 있는 작은 업체는 대부분이 외국유학, 이민, 관광 등에 필요한 비자서류나 행정서류를 해 주는 곳으로 전문적인 번역가가 필요치 않은 곳이다. 전문번역회사의 광고문이 있거나 규모가 조금 큰 회사에 팩스나 우편으로 자신의 이력서를 보낸다. 이때 자신에 대한 정보, 특히 번역에 관련된 정보를 충실히 적어야 하며, 가능하다면 자신의 번역 실력을 인정해 줄만한 객관적인 증거나 자료를 잘 갖추어 보내는 것이 좋다. 

 

(2) 출판사

그 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곳이다. 최근 들어 국내 집필 서적이 대량으로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번역출판 분야를 빼놓을 수는 없다. 대형 서점에 가 보면 수많은 출판사에서 나오는 번역서를 볼 수 있다. 출판사 가운데는 인문사회과학부터 교양분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책을 내는 곳도 있고, 특정 분야만 집중적으로 출판하는 곳도 있다. 조사해서 자기 전공을 살리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내는 출판사 편집부에 자신을 알리는 것이다. 이 때에도 역시 팩스나 우편을 이용하는데 경력 가운데 이미 번역한 책이 있으면 소개하고 없으면 자신이 선정한 책 중 일부를 최선을 다해 번역해서 보내면 출판사 쪽에서 자신을 평가하는데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3) 기업체

무역업체나 전자제품, 과학기술 장비를 제조 판매하는 회사에서도 번역업무가 필요하다. 대기업에서는 손을 뻗치고 있는 사업분야가 다양하고 규모도 커서 여느 기업체보다 번역의 필요가 많고 번역량도 상당하다. 
그러나 중소기업체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번역 업무가 필요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간혹 기업체에서는 전문번역가를 직원으로 채용하는 경우가 있고 실제로 한국번역가협회에 번역가 추천을 의뢰해 온 경우가 종종 있었다. 작년 후반기에는 한국고속철도공단에서 전문번역가를 계약직에 채용하겠다는 공고를 낸 적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기업체에 개인번역가 자격으로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기업체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그만큼 더 어렵다. 따라서 기업체의 번역물을 받는 일은 대부분이 번역회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번역을 필요로 하는 중소기업체를 조사해서 자신을 알리고 번역의뢰를 받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므로 체계적인 조사와 접근을 통해 일할 기회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4) 관공서

관공서에도 번역 업무가 있다. 대체로 문화공보실에서 번역요청이 많이 있는데 최근 들어서는 자기 관청을 외국에 소개하기 위해 영문판 홍보책자를 제작하면서 영역작업에 대한 요청이 활발해 지고 있다. 이미 지방 시청이나 서울시 구청들 가운데 영문판 홍보책자를 낸 곳이 여러 군데 있다. 시청이나 구청 공보실에 이력서를 제출하며 번역물에 대한 문의를 해서 알아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5) 문화재단과 연구소

몇 년 전에 번역기금 100억 모집을 위한 기구가 조직되었다. 주로 우리 문화를 외국에 알리기 위한 번역작업을 위해서였다. 이와 같은 취지를 갖고 번역활동을 하는 문화재단들이 있으며 각종 연구소에서는 자기 분야에 필요한 외국 자료를 번역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런 곳 역시 자신을 알리고 번역 수주문의를 해 볼 수 있는 곳이다.

 

이 외에도 이런 유형에 들지 않는 경로를 통해서도 번역의뢰를 받을 수 있고 개인으로부터 받을 수도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해 둘 점이 있다. 비록 자신을 알릴 곳을 찾았다고 해도 몇 군데 이력서를 보내고 응답이 없으면 포기해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점에서는 현실을 냉정히 직시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명번역가로 이름이 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미 번역서를 몇 권 낸 사람도 아닌 바에는 아무도 먼저 나서서 자신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일반 직장에 취업할 때를 생각해 보라. 사용자측에서는 채용할 인원의 몇 배에서 많게는 몇 백 배의 신청자를 모집해서 심사한 뒤 채용한다. 그렇다면 자기에게 일을 줄 번역 의뢰인을 찾는 무명의 번역가로서는 그만큼 많은 수의 번역기관에 수시로 자기를 알려야 하지 않겠는가. 농부가 배추 100포기가 필요하다고 배추씨를 일일이 세어서 100알만 뿌리는가? 몇 백 개 몇 천개를 뿌려 그 중에서 얼마를 거둔다. 
요컨대 씨를 많이 뿌려두라는 것이다.

 

그런데 번역의뢰를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 자신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상은 자신을 써먹을 만한 번역가로 준비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번역 프리랜서는 번역을 직업적으로는 하되 한 직장이나 계약업체에 메이지 않고 여러 곳에서 자유롭게 일을 맡아 번역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 정의에서 많은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는 부분은 아마도 자유롭게 일한다는 점일 것이다. 숨막히게 하는 조직과 꽉 짜인 회사 일정에서 해방되어 스스로 시간을 조정하며 창조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전문 프리랜서를 꿈꿀 것이다. 그러나 직업번역 현장에서 정작 중요하고 또 스스로 강조해야 할 부분은 직업적으로 한다는 점이다.

번역가에게 직업적으로 한다는 말은 번역의 결과물을 상품 가치가 있게 만든다는 뜻이다. 대학에서 혹은 직장에서 번역하는 일이 있지만 그것은 상품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번역의 결과물이 그리 신통치 않더라도 평점을 조금 낮게 받거나 상사로부터 핀잔을 조금 들으면 그만이지 그것을 누가 사 주지 않을까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번역을 의뢰하는 기관은 돈을 주고 번역물이라는 상품을 사는 곳이다. 따라서 번역된 상품이 시원치 않거나 전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번역료를 깎이거나 아예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 때는 '제가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서'라든지 '다음에는 잘 하겠습니다' 라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 번역자 자신이 소비자의 입장이 되어 슈퍼에서 물건을 살 때를 생각해 보라. 
제품은 시원치 않으면서 물건값은 제대로 받으려고 하는 제조업자가 그런 변명을 하면 동의하겠는가? 
그러므로 무턱대고 번역이라는 상품을 팔겠다고 나서기 전에 자기 상품을 잘 점검하고 준비해야 한다. 
번역의 상품성이란 두 가지로 압축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원문에 대한 정확하고 충실한 이해이고 둘째는 자연스런 우리말 표현이다. 많은 습작과 외부의 평가를 통해서 이 두 가지 점을 작 익혀 번역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번역 실력을 완벽하게 갖춘 뒤에나 번역시장을 기웃거려 보라는 말처럼 들릴지 모르나 그런 뜻은 아니다. 번역 프리랜서로 나선다는 것은 직업 번역가로 시작한다는 말이다. 프로로 시작하지만 아직 숙련된 프로는 아니라는 것이다. 번역물이 일단 상품으로서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 수준에서 시작하되 끊임없이 질을 높여 고부가가치가 있는 번역물을 내놓는 단계로 올라가야 한다. 프로로 시작했을지라도 끊임없이 숙달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마음에 드는 책을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에서 번역을 시작할 것으로 기대하면 아예 기회가 오지 않을지 모른다. 처음에는 무조건 번역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좋은 번역공부는 실제로 번역을 많이 해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실력이 턱없이 부족하고 관련 지식이 도무지 없거나 번역한 것을 검토해 줄 환경도 되지 않는데 만용을 부려 덤벼들라는 말은 아니다. 우선 번역료나 양에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실제로 직업적인 번역을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자신의 미숙함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기 번역물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나 수정을 요청하고 배우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쯤 되면 가볍게 번역 프리랜서의 길을 생각한 사람들은 가슴이 답답해지고 한숨이 나올 것이다. '어느 세월에 이렇게 하고 있어' 하는 말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이다. 그것은 번역을 너무 쉽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교 다닐 때 혹은 직장에서 영어든 일어든 줄곧 써왔고 익숙하니까, 까짓 것 번역이 별거냐 하는 생각이 밑바닥에 깔려 있을지 모른다. 아마추어 세계에서는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번역프리랜서의 길은 프로의 세계이다. 한 번 생각해 보자. 2-30대 한국인으로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말하고 쓰는데 별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면 누구나 성우나 아나운서 혹은 작가가 될 수 있는가?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고서는 어림도 없는 얘기다. 그렇다면 우리말과 외국어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기능을 요구하는 번역이 어찌 그리 쉽기를 바랄 수 있을까? 운전면허 하나 따는 데도 짧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1년까지 걸린다. 이런 점을 생각하여 마음을 급하게 먹지 않고 정말 번역이 내 적성에 맞고 하고 싶은 일이라면 현실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시작하라. 그러면 번역 프리랜서의 길을 시작할 수 있다.


출처 : < http://www.sj-study.com/menu_020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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