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생각(반면교사 혹은 타산지석)/(펌/ 편집) 영화제목짓기

영어완전정복 나선 요즘 영화 제목들

잔인한 詩 2010. 9. 2.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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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 영어발음 그대로 받아적은 제목, 암호같다

06.03.25 13:14 ㅣ최종 업데이트 06.03.28 11:33

ⓒ 영화공간
<쏘우> <돈 컴 노킹> <자투라 : 스페이스 어드벤쳐> <언더월드2-에볼루션> <이니셜D> <브로크백 마운틴> <웨딩 크래셔> <시티즌 독> <앙코르> <카사노바> <굿나잇 앤 굿럭> <브이 포 벤데타>….

최근 개봉한 영화제목들입니다. 외화지만 물론 우리나라에서 개봉한 영화들이죠. 그런데 한 번 보세요. 무슨 암호 같지 않나요? 제목만 보고 무슨 영화인지 알 수 있으신가요? 저 제목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나요?

영어를 발음했을 때 소리나는 대로 받아적은 건 알겠는데, 받아적은 영어들이 참 생뚱맞습니다. '중학생이 자주 쓰는 영단어'에 나올 것 같지도 않고요. 쉬운 영단어도 생뚱맞긴 마찬가지입니다만. 

제 주변에서 영화 <브이 포 벤데타> 재밌다는 소린 많이 들었는데요. '브이 포' 다음 단어를 똑바로 발음하는 사람은 거의 못 봤습니다. '브이 포 뭐시깽이'를 넘어' 브이포 벤댕이'까지, 가관이던 걸요?

브이 포 뭐시깽이? 벤댕이?

요즘 이런 영화가 한둘이 아닙니다. 한결같이 영어를 읽었을 때 소리나는 대로
글리쉬 고유의 발음대로 제목을 쓰는 바람이 불다 못해 그걸로 평정된 느낌입니다.


외화 수입할 때 영어 발음대로 쓰라는 '영상물등급심의원회'의 권고라도 있나 했더니, 전혀 아니랍니다. 그런 권고도 없고 어떤 규제도 없습니다. 알 수 없는 영어 제목을 달든 불어를 소리나는 대로 부르든 영화사 맘입니다. 영화홍보사 '젊은기획'측에 따르면 영화 제목은 영화수입사와 홍보사가 상의해서 짓는다고 하는데요. 상의해서 가장 좋은 제목을 고르는 거라고 하는군요?

또 영어 제목 그대로 나온다고 해서 다 원제도 아닙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앙코르>의 원제는 <바른 길로 걷다(Walk The Line)>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쟈니 캐시가 부른 노래 제목이죠. 거기엔 그가 어떻게 재기했나 하는 뜻도 있습니다. 

이 노래는 미국에선 유명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쟈니 캐시가 미국에선 비틀즈보다 더 음반을 많이 팔 만큼 유명한 가수이지만, 우리나라에선 "갸가 누구나?" 가수라는 겁니다. 컨트리 가수거든요. 그래서 바꾼 건 알겠는데, '앙코르'라니 역시 영어를 놓고 고민했나 보죠?

물론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익숙한 영화 제목 <매트릭스>도 영어발음 그대로 따온 제목입니다. 그런데 왜 '매트릭스'일까요? 침대 매트리스를 폼나게 발음하느라 매트릭스로 쓴 건 아닌 거 같은데요?

영어인 매트릭스를 듣는 우리야 아무 생각 없이 '매트릭스'라고 기호처럼 발음할 뿐이지만, 이 매트릭스는(matrix)는 '모체, 기반, (컴퓨터) 행렬'을 뜻합니다.

영화 속에서 툭하면 컴퓨터에서 초록색 암호 같은 글씨가 쏟아내리잖아요? 이게 매트릭스입니다. 그리고 또 인간들은 태어나자마자 컴퓨터가 만든 거대한 인큐베이터에서 살잖아요? 이게 또 매트릭스입니다. 영화에선 컴퓨터가 인간이 태어나자마자 뇌에 이식하는 프로그램 이름이기도 하고요.

매트릭스는 그냥 뜻 없는 기호가 아니라 뜻이 있는 단어죠. 그게 영어 발음 그대로 옮기자, 우리로선 그냥 '마징가 젯'처럼 뜻없는 기호가 돼버린 겁니다. 물론 덕분에 '영어 버케뷸러리' 공부 좀 잘 했지만요.

영어실력 향상을 위한 외화수입사 음모? 혹시 한미 FTA의 압력?

ⓒ 스폰지
물론 상큼하게 우리말로 번역한 외화도 간혹 있긴 있습니다. 곧 개봉할 영화 <뻔뻔한 딕 & 제인>도 그런 영화지요.

이 영화의 원제는 <즐거운 딕과 제인(Fun With Dick&Jane)>입니다. 그걸 최근에 'fun fun'을 '뻔뻔'으로 부르는 유행에 맞춰 살짝 비튼 거겠죠. 정직한 번역은 아니지만, 봐줄만 합니다. 아니 실은 '즐거운 딕과 제인'보다 재밌습니다. 영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딕과 제인이 좀 뻔뻔하긴 하거든요. 물론 즐겁기도 하지만요. 짐 캐리가 즐겁지 않으면 누가 즐겁겠습니까? 

이렇게 영화 제목에 아이디어를 발휘한 영화들은 대개 로맨틱하건 그냥 하건 아무튼 코미디 영화들입니다. 영어 제목을 지어서 개폼잡기보다, 듣자마자 확 다가가게 하고 싶어서겠죠?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있어보이고 싶은 건, 외국물 티 팍팍 나는 그럴싸한 폼이 아니라 '유머감각' 일 테니까요. 다른 영화들이 영어 제목을 그대로 쓰는 게 '폼나 보이고 싶어서'인 것처럼요.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 가지 없는 것> <날 미치게 하는 남자> 다들 재미있는 영화 제목들입니다.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의 원제는 <(천박한 할 shallow hal)>이었죠. 할은 주인공 이름입니다. 자신은 짜리몽땅한 주제에 쭉쭉빵빵 미녀에 목숨거는 남자 할을 비꼬는 제목이라고 볼 수 있지요. 원제와 달라지긴 했지만 '재밌다'에 한 표 주고 싶습니다. 기발하잖아요? 원제가 약간 냉소적이었다면, 오로지 말랑말랑 로맨틱하게 바뀐 게 아쉽긴 하지만요.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 가지 없는 것>도 원제는 <13살이 서른 살로(13 going on 30)>이었습니다. 13살짜리가 졸지에 서른 살로 변신해 겪는 우당탕탕 이야기를 그린 영화거든요. 전혀 다른 스타일로 태어난 제목이지만, '서틴 고잉 언 서티'라고 하지 않은 게 어디인가요?

영화사가 미치지 않은 이상 저렇게 황당하게 번역하겠냐고 하겠지만, 요즘 그런 영화들 투성이라서요. 영화 제목을 짓는 담당자들이 단체로 영어물을 먹어도 너무 먹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최근 개봉한 <인사이드 딥 스로트>나 지금 비디오가게에 가면 있는 <이퀼리브리엄>을 떠올려 보세요. 이거 해석되십니까?

어쩌면 이것들은 모두 말이지요. 전 국민의 영어 실력 향상을 위한 외화 수입사의 배려 혹은 음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혹시, 혹시? 국내에 영어를 널리 쓰이게 하기 위한, 한미 FTA의 음모? 영어 개방 압력으로 벌어진 일? 별 생각이 다 듭니다.

영어로 제목 뽑으면 폼나나요

ⓒ 젊은기획
외화 제목 이야길 하면서, 우리말을 사랑하자고 말하면 진부하다고 비웃고 싶겠죠? 우리나라 축구나 야구는 사랑하더라도 말이죠. 하지만 갈수록 영어에 대한 오만과 편견으로 똘똘 뭉친 영화 제목들을 보노라면, 그런 생각마저 듭니다. 외화 제목이야말로 우리말 쿼터제가 필요한 거 아닐까? 갈수록 우리말로 잘 만든 외화 제목 찾기가 천연기념물 찾기처럼 느껴져서요. 영화 제목 좀 알만한 우리말로 쓰면 흥행에 그리 치명적인가요? 치명적으로 흥행에 성공하는 게 아니구요?

농구를 다룬 <덩크슛>(1992)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물론 미국 영화죠. 그런데 재밌는 건요. 이 영화는 미국보다 이탈리아에서 떴습니다. 한 마디로 대박이었죠. 이탈리아가 미국보다 농구를 좋아할 리가 없는데도 말이지요? 그런데 이탈리아에서 이 영화가 개봉할 때 제목은 <백인은 배트잡는 법을 몰라>였습니다.

어쩌면 '영어 소리 나는 대로 적기' 제목의 원조일지도 모를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1965) 아시죠? 이 영화가 멕시코에서 개봉할 때 영화제목이 '신참 수녀의 반항'이었다나요? 황당하긴 하지만, 재밌습니다. 그 나라 영화사의 고민이 귀엽게 느껴지는 걸요.

물론 우리나라에도 그에 못지않은 제목, 많습니다. 음악의 고음질 '하이 파이'를 뜻하는 < Hi Fidelity >란 제목을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라고 지은 건, 황당한 외화 제목 만들기의 최고 사례로 길이길이 이야기되지만요. 지금 같아선 그게 더 귀엽게 느껴질 지경입니다.

하다 하다 최근엔 일본 영화까지 소리 나는 대로 옮기는 판이니까요. 그것도 국적불명 짬뽕스타일로요. <착신아리 着信アリ> '착신'은 일본어 한자를 우리 발음으로 읽어서 거기에 '아리'란 일본어를 붙인 거잖아요. 이것도 아이디어라고 해줘야 하나요?

박찬욱 감독은 <박찬욱의 오마주>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영화연출의 3대 적은 똥폼, 똥무게, 잔재주다. 어쩌면 영화 제목 지을 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영어제목이 폼잡고 무게잡을 수 있다는 착각부터 버리는 게, 어쩌면 영어제목을 버리는 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관객들에게 당최 이게 무슨 영화인지 모르게 만들겠다. 영화보기 직전까진." 이런 '티저 광고' 같은 큰 뜻을 품은 게 아니라면요.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18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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