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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번역원의 2010년, ‘유통의 해’로 만들 것”

잔인한 詩 2010. 9. 4.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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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연 제4대 한국문학번역원장

황정은 
▲   김주연 한국문학번역원장

 
[독서신문] 황정은 기자 = “나는 치밀한 전략과 투자로 만들어진 강력한 문화상품이다.”
세계무대로 진출하며 갈수록 그 기량을 뻗고 있는 가수 비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 같이 언급했다. 자신이라는 한 사람을 위해 여러 전문가들이 기획과 연구를 거쳐 투자를 했고 그 결과 ‘비’라는 막강한 문화병기가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막강한 문화상품을 만들기 위해 많은 배우와 가수들은 그들 자신이 연예인으로 만들어지기 전인 ‘태초’부터 정확한 방향과 목적을 갖고 전략상품으로 제조된다. 기획사는 이들 배우들에게 세계를 매료할 수 있는 ‘끼’를 먹이고 세계의 누구와 겨뤄도 뒤지지 않을 ‘능력’을 입히며 그들이 장성해서 해외로 진출할 때까지 ‘인큐베이터’안에서 치밀하게 그들을 양육한다.
 
이처럼 ‘한류(韓流)’를 이야기 할 때 우리에게서 대부분 거론되는 것은 한국의 음악과 드라마, 그리고 영화다. 화려한 퍼포먼스와 감미로운 목소리, 탄탄한 스토리로 무장한 한국의 그것들을 통해 한국은 세계의 문을 두드린다.
 
그렇다면, 과연 ‘한류(韓流)’가 비단 퍼포먼스에만 국한된 것일까. 최근 미국의 한 문예지에서는 한국문학특집기사를 16면에 걸쳐 다룬 바 있다. 미국 오클라호마 대학이 발행하는 해외도서 소개 전문잡지인《World Literature Today》 2010년 1~2월호에 총 16면에 걸쳐 한국문학특집기사가 실린 것. 한국문학의 시대구분과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에 대해 언급한 이 문예지는 한국문학이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로 발돋움하고 있음을 보여준 ‘조각구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예지에도 소개가 됐지만 해외에서 현재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작가 중의 한 명으로 김영하 소설가를 들 수 있다. 지난번 한국을 방문한 제나 존슨 미국 하코트 편집장이“김영하의 작품이 미국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고 언급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작품은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받고 있다.
 
소설『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빛의 제국』,『검은꽃』을 통해 이미 한국현대문학의 유력한 작가로 불리는 그는 “나는 인큐베이터를 통해 키워졌고 이제 국제 출판, 문단시장에 설 수 있게 됐다”고 언급하며 한국문학번역원을 자신이 길러진 인큐베이터라고 지칭했다. 가수나 배우들이 각자의 기획사를 통해 세계진출을 할 수 있도록 길러진다면 작가는 한국문학번역원을 통해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준비작업’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한국문학번역원(이하 번역원)은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해 일한다. 한국의 작품들이 세계인들에게 읽힐 수 있도록 해당 언어로 변환하는 번역작업을 지원하고 현지에서 출판될 수 있도록 출판사업을 수행하며 다른 나라들과의 교류사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번역원은 지난 1996년 (재)한국문학번역금고로 탄생한 후 2001년 (재)한국문학번역으로 확대됐고 2005년 한국문학번역원으로 명칭을 변경해 지금의 기관으로 자리잡았다. 올해로 설립된 지 약 15년을 맞게 된 번역원은 그동안 다양한 사업을 진행해 왔고 그 결과 신경숙의『외딴방』이 프랑스에서 ‘숨겨진 작품상’을 수상했으며 고은시인이 스웨덴 시카다상을 수상하고 오정희 작가의『새』가 독일에서 리베라투라상에 선정되는 등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 번역원의 ‘존재의 이유’
 
번역원의 ‘존재의 이유’는 바로 한국문학의 해외 출판 지원이다. 이에 대해 김주연 한국문학번역원장은 “한국어가 소수언어이기 때문에 번역원은 필요하다”고 전했다.

“언어로 되어있는 문학이 세계시장에서 함께 경쟁을 하려면 번역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류’라는 말들이 많이 나오지만 대개 무대를 통한 공연예술을 일컫고 있죠. 문자가 직접 매개되지 않은 스크린을 통한 영상예술이기에 진출에 있어서 매개로 인한 장애는 적지만 문학은 그렇지 않아요. 언어의 장애가 있기 때문이죠. 때문에 이 문제를 해소하는 일에 국가가 개입해 지원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발족한 것이 번역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번역원은 지금까지 국내의 많은 작가들을 해외에 소개했다. 작품을 선정하는 기준은 ‘한국문단에서 인정받았는가’와 ‘해당 언어권에서 받아들여질 것인가’의 두 가지다.
 
“작품성과 대중성, 이것을 별개로 볼 수는 없습니다. 국내에서 작품성이 있다고 인정받은 작품은 대개 인기를 얻은 것에서만 봐도 이를 알 수 있죠. 그리고 다음에 언어권을 봅니다. 과연 해당 언어권에서 수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는 거죠. 이를테면『아내가 결혼했다』를 프랑스에 소개했을 때 과연 큰 반응이 있을까하는 거죠. 한국처럼 유교적인 곳에서는 파격적인 소재겠지만 동성결혼까지 허용하는 나라에서도 과연 그만큼의 반응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세계인들도 한국의 ‘엄마’에 공감할 것일까. 지난해 국내에서 최단기간 백만부 판매라는 기염을 토하며 ‘엄마 신드롬’을 일으킨 신경숙의『엄마를 부탁해』는 현재까지 영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등 16개의 나라에 저작권이 판매됐으며 2009년 당시기준으로는 선인세 4억5천만원으로 14개국에 수출이 계약됐다. 과연, 세계인들에게 한국의 ‘엄마’가 통할 것인가. 하지만 김 원장은 이러한 물음 자체가 한국인의 편견이라고 지적했다.
 
“한 가지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엄마’라는 인식에 대한 한국인의 편견입니다. ‘엄마’에 대한 어떤 이미지가 한국에만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스페인이나 멕시코는 가족적 유대관계가 한국보다 훨씬 친밀해요. 때문에 ‘엄마’를 한국적 가치와 관련지어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아직 각 나라에 출판은 되지 않은 상황이기에 일단 지켜봐야겠지만 일단 각 나라로부터 받아들여지는 원인 중 하나로 현지에도 ‘엄마’에 대한 근본정서가 편재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는거죠.”
 
번역원에 따르면 지난 1980년대와 90년대 해외에서 가장 좋은 반응을 받고 있는 작가는 이문열이었다. 그러다가 이후 황석영의 소설이 조명을 받은 후 최근에는 김영하와 조경란, 신경숙, 이승우 작가의 작품으로 그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해외문단으로부터 관심을 받는 국내 작가들 작품의 공통분모는 과연 존재할까.
 
“이건 아주 힘든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어 이승우 작가와 김영하 작가는 아주 다르죠. 나이도 다를 뿐 아니라 이승우 씨는 종교적 초월성과 같은 것에 심층적으로 들어가는 진지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면 김영하 씨는 그와 정 반대죠. 유희성과 언어가 아주 독특하며 주변문화에서 소재를 이끌어내요. 즉 이들 작가들만 봐도 공통점이 없는 거죠.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작품이 좋은 것이 공통점입니다. 크게 말을 하자면 한 곳에서 인정받은 작품이 다른 곳에서도 평가를 받는 다고 볼 수 있어요. 다만 소재의 특이성이 문학 전체에서 부각돼 있는 것은 그 소재 때문에 일시적인 조명을 받을 수도 있고 반대로 통하지 않을 수도 있죠.”
 
 
■ “올해는 유통에 총력 기울일 것”
 
이처럼 현재 한국문학은 세계로 점차 뻗어나가고 있지만 이것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 위해서는 유통시스템이 먼저 마련되지 않으면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한 출판관계자는 “모든 상품이 그렇겠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책은 유통에 민감한 반응을 나타낸다”고 말한 바 있듯 국내 시장을 넘어 세계로 진출하기 위해서 탄탄하고 촘촘한 유통망은 필수다. 이러한 중요성을 인식해 한국문학번역원은 내부적으로 올 한 해를 ‘유통의 해’로 정했다고 언급했다. 
 
“현재 번역원에서 해외로 출간된 책은 28개국 언어로 410종이고 발간을 준비 중인 미출간본까지 합하면 29개국 언어권의 466권이 현재 번역돼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 번역된 작품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말들을 들은 적이 있어요. 결국 유통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죠. 따라서 금년에는 유통에 총력을 기울일 예정입니다.”
 
김주연 원장에 따르면 이제부터 번역원에서 지원을 받아 나오는 도서들은 관계된 공공기관에 모두 공급된다. 사업은 크게 온오프라인으로 나눠 진행되는데 온라인 사업의 진행을 위해 번역원은 올 해 정보관리팀을 신설했다. 이는 지금까지 번역원에 없었던 기구로 DB작업의 수준보다 더 깊이 들어가 정보망을 갖출 예정이다. 
 
“한국문학뿐 아니라 다른 한국의 책들도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를 인물과 작품, 발행처로 구분해 검색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원작과 번역작까지 총 망라하는 시스템을 개발해 실시간으로 공급하고 필요한 사람들이 만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또한 오프라인에서도 해당 책들을 만나볼 수 있도록 직접 현지에 책을 비치하는 작업을 시행한다. 번역원 직원들이 총동원돼 KLTI 포럼을 하는 도시를 포함해 인근의 도시의 대학, 도서관, 기관 등 한국문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출입하는 곳에 책을 갖다 놓을 예정이다. 
 
 
■ ‘번역 아틀리에’, 번역의 질을 논하다
 
하지만 이러한 유통시스템도 번역의 질적 수준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그 효과를 크게 거두기 힘들다. 따라서 번역원은 번역의 질적 수준을 보완하기 위해 KLTI Translator(한국문학번역원 전문번역가)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KLTI란 우수한 번역가를 유치하기 위해 번역의 질이 객관적으로 검증된 전문 번역가들을 선정하는 것으로 양질의 번역작을 생산하기 위해 고안한 프로그램이다. 
 
사실 어디를 가든 번역가들은 ‘번역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고 번역가에 대한 대우를 조금 더 개선해야 하지 않느냐고 입을 모은다. 이처럼 앞날이 그리 ‘창창’하지만은 않기에 현재 문학작품에 대한 번역을 지도하는 대학과정도 거의 전무한 상태이며 현직의 한 교수에 의하면 학생들도 문학번역보다는 기술위주의 통역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문학번역에 대한 욕심은 크지만 한 번도 문학번역을 배워본 적이 없고 설령 배웠다 해도 출판사에서 번역가에서 알아서 일감을 주지도 않죠. 사실 문학번역에 종사하면서 경제적으로 열악하다는 것은 국내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계적으로 그건 모두 마찬가지죠. 최근에 들어서는 전업 번역가들이 간혹 나오고 있고 번역원도 그런 번역가에 대한 지원을 높이기 위해 ‘번역 아틀리에’를 운영합니다.”
 
번역아틀리에란 금년부터 신설된 것으로 번역아카데미 정규과정 및 심화과정을 수료한 우수 수료자 중심의 공동번역센터를 의미한다. 번역에 대한 우수한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충분한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업이다.
 

취임한 지 이제 1년이 지난 김주연 한국문학번역원장. 그는 지난 1년간의 활동 중 가장 어려운 점으로 딱 한 가지를 들었다. 그것은 바로 ‘문학에 대한 한국사회의 이해의 빈곤’이었다. 매년 노벨상이 거론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올해 우리의 노벨상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라고 묻지만 평소 책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서 노벨상을 거론하는 것은 아이러니컬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김주연 원장은 위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한다고 한다. “당신이 진정으로 문학을 알게 될 때”라고.
 
chloe@readersnews.com

출처 : http://www.readersnews.com/sub_read.html?uid=18647&section=sc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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