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생각(반면교사 혹은 타산지석)/(펌/ 편집) 번역일반

TKMB - 번역 에러 관련 경과와 감상

잔인한 詩 2010. 8. 20.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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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록 영화번역 얘긴 아니지만...이분의 번역에 대한 애정과 열정과 노력을 본받고 싶다..
아래는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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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KMB - 번역 에러 관련 경과와 감상
 
 
"To Kill A Mockingbird"[한겨레 출판사의 번역책을 의미]는 반드시 다시 번역이 되어야 합니다. '저 책을 읽고 뭐가 뭔지 모르게 되었다'는 소리를 가끔 듣는데, 감동적인 저 소설에 대해 이런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실정입니다. 게다가 한 두 군데도 아닌 많은 심각한 오역으로 점철되어 있는 저 번역서를 가지고 독후감 숙제를 할 우리 청소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선생님들께서는 당분간 새로운 번역서가 나올 때까지는 숙제를 안 내주시면 어떨까 합니다. (물론 틀리게 번역한 부분 보다는 맞게 번역한 부분이 훨씬 많긴 합니다. 중요한 부분들을 많이 잘못해서 그렇지.) 저로서는 가능하다면 내가 새로 번역해서 출판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류주환 - 2000년부터의 생각 / 새로운 출판본이 나와서 지금은 효력이 다한 생각임.)
 
 
"To Kill a Mockingbird"(TKMB)는 한겨레 출판사에서 1992년에 "앵무새 죽이기"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해서 우리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커다란 아이러니였지만 그 번역 책은 오역이 무척 많았고, 특히 제목 자체 역시 오역이라 볼 수 있으며, 더구나 결말의 가장 중요한 대목을 정반대로 해석해서 원 작품을 크게 훼손시켰다.

한겨레 출판 책의 오역 문제를 나름대로 해결한 문예출판사의 책이 2002년에 출간되었다. 따라서 여기 나온 이야기들은 지난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다만 필자가 TKMB에 대해 가졌던 관심을 술회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필자가 1990년대 전반 언젠가 한 기업체 연구소에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며칠 동안의 교육연수를 갔는데, 거기서 우연히 식당에서 어떤 아가씨를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다른 계열의 회사 직원이었고, 아마 화장품 판매 담당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녀는 최근에 책을 하나 읽었는데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책 이야기를 열심히 들려주었다.

그 내용 자체는 금방 잊어버렸고, 다만 그런 책이 있음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다 후에 우연히 서울의 교보문고에 들렀다가 문고본(원문)으로 TKMB가 쌓여있었음을 발견했고, 한 권을 구입해서 읽어 보았다. 그때 들려주었던 이야기는 물론이지만 얼굴도 떠오르지 않았지만 그 어렴풋한 인상과 처음 만난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던 진지함이 상기되면서 역시 감동적인 책임을 느낄 수 있었다.

세월이 조금 흘러 1990년대 말쯤의 어느 해 겨울이었다. 서울에 갔다가 우연히 한 서점에 들러 책들을 보고 있었다. 그때 한쪽에 한겨레 출판사의 번역판이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 호기심에 잠시 별생각 없이 뒷부분을 떠들어 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 원문과는 반대로 오역이 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사실을 그냥 지나치려고 했지만 두고두고 그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무엇보다도 처음 그 책에 대해 감동을 받았다는 그 아가씨의 아름다운 순수한 열성이 그 오역에 의해 배신을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만 밀려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무슨 행동을 취하기 전에 다시 확인하려고 번역책을 구매했다. 책을 구매하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이렇게 그 비용이 아까워본 적이 없었다. 혹시 지금이라도 환불 받을 법적 근거는 없을까. 낙서를 많이 해놓아서 실상 그러라고 해도 안 하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그 책의 번역은 문제투성이였다. 도입 부분의 역사를 언급하는 곳이라거나 작품의 핵심인 마지막 부분들도 엉망이었고 중간에 무슨 평이한 묘사나 대화들이 이어지는 곳에서는 좀 덜했지만 종교 같은 무슨 중요한 개념이 들어가는 부분들은 오역이 나오기 일쑤였다.

난 기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 땅의 순수를 지키는 기사였다. 인상으로만 남은 그 아가씨의 기사였고 방학이나 학기 중의 독후감 숙제를 하는, 그 번역책을 접해야 하는 허다한 소년 소녀들의 감동을 온전하게 지켜주는 기사였다.

번역책의 오류를 알았을 때 바로 책 뒤에 적혀 있는 전화로 전화를 걸었었다. 담당자는 그런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대화를 얼버무려서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없었다. 한참을 다른 일에 묻혀 잊고 지내면서 그 책에서 받은 감동을 운운하는 말들을 종종 듣게 되었다. 자꾸만 공식적으로 나서야겠다는 사명감이 강해졌다.

그래서 스스로 기사로 자처했다. 그리고 뽑은 첫 칼은 2000년 1월 말의 출판사로 보낸 팩스였다. ("누가 밥 이웰을 죽였나") 그러나 그 장문의 팩스에 대해 출판사로부터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팩스를 받았음을 확인까지 했다. 그 후로도 서점에 가면 그 책은 잔뜩 쌓여 있었고, 초중고의 선생님들은 독후감 숙제를 계속 냈다. 출판사에서는 내가 아는 한 어떠한 사과나 최소한의 정정 시도도 없었다. 정말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었다.

그 당시는 내가 이런저런 주제로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다음 칼은 인터넷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주로 번역판의 해석 오류들을 지적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고, TKMB의 소개 자체는 구색을 맞추는 정도의 페이지였다. 많은 사람들이 홈페이지에 방문을 했고 내가 지적한 가장 중대한 부분에 대해 스스로 알아보고도 번역판 역자와 같은 오역을 해서 나에게 반론을 펴온 사람조차 있었다. 미국으로 유학 간 중고등 학생들이 그 책이 과제로 나와서 질문과 요구를 해오는 경우도 많았고, 국내의 학생들이 독후감 숙제 자료를 구하러 오는 경우도 많았다. 진지하게 작품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간혹 만날 수 있었다.

2002년 7월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곧 동아일보의 한 기자분이 한겨레 책의 잘못에 대해 알지 못한 채 그 책을 인용하면서 자세한 책 소개 겸 작품의 내용의 감동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비교적 짧지 않은 분량의 기사를 신문에 실었다. 그 인용문에도 몇 가지 번역 오류가 들어 있었다. 나는 그 기자에게 전후 사실들을 아주 자세하게 지적하는 연락을 했고, 얼마 후 그 신문의 같은 난(欄)에 나의 실명이 나오면서 내 지적을 소개하는 기사도 실렸다. 그때 한 인터넷 카페에서 나를 알고 있던 분이 외국을 나가다가 우연히 그 기사를 보고 연락해 온 적이 있었다. 그때 나의 답장이 이랬다: 020726.

한편 가장 확실한 해결방법은 번역책을 다시 출간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일찍이 간파했다. 그래서 문장 파악을 틈틈이 정확하게 해 보고 있었고, 관련 자료들을 몇 개 모을 수 있었다. 1960년대에 이 소설을 영화화한 그레고리 펙 주연의 영화 "알라바마에서 생긴 일"도 구해 보았고, 번역자가 이런 것을 한번만 참조했어도 그런 중대한 오역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옛날에 이미, 그것도 비교적 정확하게 그 작품이 번역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은 1978년에 "아이들이 심판한 나라"라는 제목으로 도서출판 문장에서 출간한 책이었다. 그러나 이미 절판이 된 책이었고 저작권이 중요시되지 않던 시절에 만들어졌기에 재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홈페이지에 그런 의사도 밝혀 놓았고 생각 날 때마다 오랫동안 여기저기 출판사에 출판 의사를 타진하고 있던 중이었다. 저작권의 현재 상태를 확인하려고 외국의 원 출판사에도 여러 번 연락을 취했지만 어쩐 일인지 연락을 받은 사람들도 잘 알지 못해 이리저리 나를 돌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동아일보 기사 일이 생겼고, 그 즈음에 누군가 나에게 이미 저작권을 한 출판사에서 획득해서 작업을 해왔고 출간을 앞두고 있다고 전해주었다. 지금 보면 그것은 문예출판사였고, 2001년에 번역출판 저작권을 획득한 것으로 되어 있다. 또 그 즈음에 어떤 나이 많은 외국의 여성 에이전트가 그 책의 번역출간 저작권을 관리하고 있고, 국내의 에이전트들도 그녀에게 접촉을 시도했었는데 이상하게 연락이 잘 되지 않았었다는 말도 들렸다.

이미 난 혼자 개인적으로 무엇인가를 해보려고 어렴풋이 생각하고 마음을 쓰고 있는 동안 국내의 출판사들은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는 추측이 들었다. 무언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느낌과 나의 접근이 좋게 말하면 순진했고 심하게 말하면 바보 같았다는 자책도 느껴졌다. 출판사들이 움직인 시기는 대략 내가 한겨레 출판사에 문제제기를 공식적으로 한 1년 후쯤이 되지 않을까 하는 추정도 해보았다.

당시에 나의 실망은 조금 컸나보다. TKMB 페이지를 닫은 것이었다. 실상 여러 주제에 걸쳐 무척 방대한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어서 여유가 없다는 이유, 그리고 웹 서버 프로그램과 컴퓨터의 문제 등의 이유와 함께 나의 TKMB 홈페이지가 한겨레 책의 오류를 시정하고자 하는 목적이 비교적 큰 비중을 차지했었기에 새 출판본이 나오면서 그 존재이유가 약해졌다는 이유, 게다가 직접 번역출간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좌절된 것도 어느 정도 작용한 결과였다. 2002년 8월 28일에 게재된 홈페이지 폐쇄 메시지는 다음과 같았다.

"앵무새 죽이기" 홈페이지를 더 이상 운영하지 않습니다.

그 동안 이 한글 번역책의 번역 오류가 극심해서 그것에 대한 지적을 하려는 목적으로 유지되어 왔는데, 누군가 번역 출판권을 얻어서 출판을 준비중이라고 합니다. 이전의 번역 오류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몇 달 후인 2002년 9월인가 문예출판사의 번역책이 출간되었다. 재미있게도 그 출판사에서는 번역책 소개글을 상세하게 작성해서 인터넷 서점들에게 제공했는데, 그 시작이 바로 정확히 위의 메시지였다. 새로운 번역이 필요했음을 극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인용한 것이었다. 내 좁은 소견이겠지만 나의 홈페이지를 모니터링하면서 내가 재번역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과 번역 출간을 하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한참 전에 알았으리라고 생각되는데, 자신들이 그 일을 정작 진행하면서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던 듯하다. 그게 생존경쟁에서 남을 이기는 법이겠지. 또 거꾸로 생각하면 적절한 시기가 되기까지 필요한 비밀을 유지하는 것도 기업의 중요한 책략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문학과 예술에서까지...

하여간 문예출판사와는 어떻게 연락이 되어서 내가 보내달라고 했는지 어땠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출판사에서는 친절하게도 비평 겸 선전을 기대하면서 책을 한 부 증정해 주었다. 그리고 TKMB를 바탕으로 또 기획을 하고 싶은데 어떤 방향이면 좋겠느냐는 문의도 해 와서 그에 대해 나의 생각을 들려주기도 했다.

문예출판사 출판본은 아직껏 한겨레 출판사 출판본에서와는 달리 어느 한 부분도 자세히 원문과 대조해가며 비교해 본 적이 없다. 다만 대략 내가 지적하던 큰 오류들은 없는 것으로 보아 무난한 해석일 것이라 짐작하고 있을 따름이다. 또한 "아이들이 심판한 나라"와 영화 등의 자료들을 가지고 번역에 착수했다면 결코 한겨레의 책보다 나쁜 번역일 리는 없을 터였다. 다만 문예출판사 출판본 역시 한겨레 출판본에서 사용했던 "앵무새 죽이기"라는 오역인 제목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어 제목을 똑같이 사용한 점이 큰 흠으로 보인다. 과감하게 제목을 바꾸고 교육계와 일반 대중들에게 대대적인 홍보를 해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앵무새 죽이기"라는 오역제목이 대중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그것이 더 흥행성이 높다고 해도, 두고두고 결점으로 남을, 제목 같은 중대한 부분을 왜 그렇게 처리한 것일까. 앞의 말의 반복이거나 관계가 있는 말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출판사들은 다른 기업들이 그렇듯이 대개 이윤을 추구가 최대 목적일 것이라서, 간혹 그 속을 이해할 수 없는 복마전이라고 생각되는 경우가 많다.

허다한 외국의 작품들이 오역으로 훼손되는 일은 실상 비일비재함을 잘 알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번역의 질은 더욱 높아져야만 하고, 번역에는 창작에 버금가는 인정과 존중이 주어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필자의 오랜 주장이다.

그러다 최근 여러 자료들을 나 혼자 간직한다는 것이 의미가 없으며, 이런 역사를 알리는 것도 좋은 일이고, 또 이런저런 과정을 통해 TKMB의 멋진 세상을 소개받고 경험하게 되는 사람들이 하나라도 더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홈페이지를 재개하였다.

다른 페이지에서도 자세히 설명했지만 이 사이트에서는 Mockingbird를 앵무새로 번역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지양하고 원 뜻인 '흉내지빠귀' 혹은 단순히 '지빠귀'로 환원시켜 사용하고 있다. 또한 제목은 직역하면 자연스럽지 않아서 "앨라배마 이야기"로 바꾸어 부르고 있음도 지적하고자 한다.

(c)류주환, 2006     


  앨라배마 이야기
  ⓒ 류주환


출처 : http://kenji.cnu.ac.kr/tkmb/errors/error-hist.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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