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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욕한 내가, 시크릿 번역작가 만나 인터뷰하다!

잔인한 詩 2010. 9. 2. 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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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인생/사는 이야기 2008/09/24 09:36

자신이 욕한 저자와 
직접 마주쳐본 경험이 있는가.

우리나라에서만 백만 부 이상이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 ‘시크릿’. 

내가 아는 분들은 이 책을 읽고 부서 직원 10여명에게 선물하시는 분이 있었는가하면, 
또 어떤 한의사분은 1백여 권 이상을 구입해서 환자들에게 선물했다는 이야기를 아내로부터 들었다.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되었다.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하고 구입해서 읽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실망스러웠다. 

화려했던 명성에 전혀 걸맞지 못한 부분이 많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짧은 인터뷰와 짧은 글귀로 짜집은 듯한 단편적인 메시지가 너무 싫었다.

그리고 평소에 인터넷 서점에 서평도 쓰지 않다가 지독한 악평을 썼다. 2007년도에 내가 읽은 200여권 중에 최악의 도서로 선정하였다. 그리고는 한동안 잊어버렸다.

그런데 어느 날 내 블로그의 방명록에 번역하는 사람이라고 짤막하게 인사말을 남기신 분이 있었다. 누굴까 하고 ‘몽상’이라는 닉네임을 따라 낯선 블로그를 방문했다. 놀랍게도 블로그의 주인장은 시크릿의 번역가였다. 그제야 내가 혹평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봐도 다소 지나칠 정도로 악평을 가했던 것 같았다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시크릿'의 번역작가, 김우열님, 찾아갔을 때 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아마도 내 사진 실력을 믿지 못한 듯^^, 사실 쑥쓰러워서 회피하셔서 허락을 받고 블로그(http://blog.naver.com/ieol)에서 사진을 가져옴]


아마도 내 책은 제대로 팔리지도 않는 것에 대한 질투심과 내 열등의식이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일전에도 박광세씨의 도서 ‘드림 스파이’에 혹평을 했다가 저자가 내 블로그에 남긴 댓글을 보고 민망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관련기사: 저자에게 욕하다 딱 걸리다

드림 스파이보다 더한 악의적 혹평을 달았기에 송구한 마음이 들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 모두 겸허하게 나를 받아주었다. 이러한 관용성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은 누구보다 높은 자존감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한다.

비평을 가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악의성을 담기보다 조금 더 당당하고 건전하고 논리적으로 비평을 가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하는 반성의 마음이 들었다.

(이미지출처: YES24, 07년도에 발간된 초대형 베스트셀러라는 말이 어울린만한 책)


론다 번이라는 ‘시크릿’  저자는 이 도서에서 인류에 전해 내려오는 1%의 비밀을 공개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간절히 소망하면 우주가 그 소망을 들어주도록 되어있다’는 법칙이다.

이 1%의 비밀을 알기 위해서 불과 1,2년 사이에 전 세계적으로 2천만 부 이상의 도서가 판매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1백만 부 이상의 도서가 독자들의 손에 들어갔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의 내용에 공감을 표명 하였지만, 또 한편으로 상업주의가 만들어낸 빈껍데기 책이라는 혹평도 많았다.

나 역시 그렇게 가혹하게 서평을 남겼던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내 블로그를 통해 방명록을 남긴 사람이 시크릿의 번역 작가임을 알게 되었다.

‘도대체 이 책을 우리말로 번안한 사람은 누구일까?’라는 순수한 호기심으로 그를 찾아 나섰다.

김우열 작가였다. 놀라운 사실은 번역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가 영문학도도 아니었고, 번역가로서 길을 걸어오지도 않은 휴대폰 개발했던 엔지니어였다는 사실이었다. 평범한 직장인에서 ‘시크릿’의 번역 작가로 변신한 그를 만나보았다. 


'시크릿'의 번역자가 김우열씨와 인터뷰 
-  엔지니어에서 번역 작가로 변신한 김우열 작가를 만나다!


따뜻한 카리스마, 이하 ‘따’ :어떤 계기로 시크릿을 번역하게 되었는가? 

김우열 번역 작가, 이하 ‘김’: 사실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초대형 베스트셀러였다. 출판사에서 상당한 수준의 기획적 접근이 있었기에 번역가를 선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사실 다른 번역가가 맡기로 되어 있었으나 서로의 조건이 맞지 않아서 내가 선택되었다. 물론 이와 유사한 자기계발서를 번역해본 경험이 높이 평가되었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따: 도대체 한국에서 얼마나 팔렸나?
김: 07년 6월에 발간되어서 08년 초까지만 해도 1백만부가 팔렸다고 들었다. 이후에도 꽤 시간이 흘렀기에 상당수의 부수가 더 나간 것으로 알고 있다.


따: 인세로 받았나? 아니면 번역료로 받았나?
김: 출판사에서 처음부터 번역료를 고집했다. 선인세로 상당 금액을 이미 지출했기에 추가적으로 금액이 더 지불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따: 번역 조건은 좋았나?
김: 비교적 좋았다. 번역을 끝내고는 일종의 보너스도 받았다.


따: 인세로 받았다면 더 좋은 것 아닌가?
김: 물론이다. 번역가가 통상 4~5%를 받는데,2~3%만 받았더라도 수억대가 넘는 돈이 생겼을 것이다.

따: 우와, 아쉽군요. 냠냠, 쩝쩝$$$$$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베스트셀러인 ‘시크릿’을 3% 인세로 계약했다고 가정해봅시다. 책값이 12,000원이니 책 한 권 판매될 때마다 인세는 360원이 됩니다. ‘시크릿’이 2007년 6월부터 2008년 2월까지 100만부 가량이 판매되었다고 합니다. 100만부에 인세 360원을 곱하면 3억 6천만 원이 나옵니다. 9개월 동안의 번역료로 치자면 파격적인 금액이 되었겠죠. 
- 도서 ‘나도 번역 한번 해볼까, 김우열저’중에서 일부 개정


따: 시크릿 번역이후 달라진 점은 없는가?
김: 내 이름이 많이 알려졌다. 덕분에 몸값이 제법 올랐다.


따: 그러면 번역 의뢰도 많지 않은가?
김: 물론이다. 번역 의뢰가 많아졌다. 다만 몸값이 올라서 조건이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또 한편으로 좋은 책을 선정하고 싶은 욕심 탓에 신중하게 책을 고르게 되었다.


따: 어떻게 번역가가 되었는가?
김: 원래 번역가가 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엔지니어로서 핸드폰 기계를 설계하고 만드는 일을 했다. 그런데 99년에 우연히 번역가로서 발을 담그게 되었다. 명상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분의 요청으로 번역을 도와줬다. 거의 봉사수준의 번역이었다. 그렇지만 출판된 도서에 내 이름이 공역자로 이름이 들어갔다. 나름대로 뿌듯했다. 직장을 다니던 2000년도에 내 이름을 걸고 첫 책이 그렇게 나오게 되었다.

그 해에 회사를 사직했다. 조금 더 공부하기 위해서 유학을 준비했다. 그러나 하고 싶은 사업이 있어서 유학을 포기하고 사업을 했다. 쓴 맛을 톡톡히 봤다. 망했다. 그렇게 2년가량을 헤매다가 2003년에 번역세계에 완전히 몸을 담그게 되었다.


따: 번역가로서 좋은 점은 무엇인가?
김: 1)무엇보다 시간적으로 자유롭다. 스케줄 조정이 가능하다. 하루 일과 중에도 시간적 융통성이 크다. 어떤 사람은 낮에 번역하고 저녁에 놀고, 어떤 사람은 오전에 실컷 자고 저녁에 일한다. 1권 번역하는데 보통 1달 보름에서 2달가량 걸리는데 번역이 끝나고 나면 여행을 갈 수도 있다.

2) 좋은 책을 소개한다는 보람이 있다. 의미 있는 일을 했다는 느낌이 든다.

3) 번역 하는 일 자체가 재미있다.

4) 잘만하면 돈도 꽤 벌 수 있다.

5) 번역 일을 토대로 여러 가지 일을 확장해서 할 수 있다.

여러 출판사도 알게 되고, 집필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고, 강의도 할 수 있게 되고, 여러 가지 기회가 생기는 것 같다.

6) 무엇보다 독자들이 만족하고 반응이 좋을 때가 가장 기분이 좋다.


따: 번역가가 일반 직장인들보다 좋은 점은 무엇인가?

김: 1) 시간적으로 융통성이 있고 자유롭다는 점. 출퇴근 시간으로부터의 자유, 일과 중인 평일에도 훌쩍 떠날 수 있는 자유

2) 나이가 들어도 능력만 있다면 정년에 상관없이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특권

3) 다양한 책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책으로부터의 지식과 감성을 키울 수 있다.

참조, 나도 번역 한 번 해볼까, 김우열저, p87~88



따: 번역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김: 1) 불안정한 수익구조가 가장 딜레마다.

2) 일의 연속성이 없는 경우가 많다.

3) 번역가가 셈이 서툴다. 그러다 보니 손해 보는 일이 많다. 번역해주고도 제대로 돈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4) 항상 약자 입장인 경우가 많다.

5) 번역가로서 첫 데뷔가 어렵다. 번역가가 될 경로가 없기 때문이다.


따: 프리랜서의 어려움은 무엇인가?

김: 1) 프리랜서는 버는 돈이 일정치 않습니다. 월급을 또박또박 받던 사람이 수입이 들쭉날쭉한 상황에 부딪히면 당황할 때가 많지요. 어떤 때는 갑자기 5,600만원이 들어왔다가도 또 어떤 때는 서너 달 동안 수입이 3,40만원으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당연히 불안해집니다. 평소에 유비무환의 자세를 견지하여 대비하지 않으면 카드 대출로 근근이 몇 달을 버텨야 하는 좋지 않은 상황에 맞부딪힐지 모릅니다.

2) 생활이 피폐해지기 쉽습니다. 제가 아는 한 프리랜서들 가운데 ‘건강한’ 생활 습관을 유지하는 사람은 매우 보기 힘듭니다. 아무래도 일정한 시간에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에 비해 마음이 편하다 보니 자기 관리가 안 되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이 자기 관리가 안 되어 심하게 폐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술 담배에 찌들어 사는 이도 더러 있지요. 즉, 자유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3) 이미지 관리를 하지 않으면 영락없이 백수로 오해받습니다.

4) 하나도 제대로 못한다는 비평을 감수해야 한다.


따: 하루 일과는 어떻게 보내는가?

김: 혼자서 일을 했을 때는 보통 5시에 일어나 7시 정도에 작업을 시작해서 3,4시까지 작업을 했다. 그런 다음에 독서도 하고 외부 사람들과도 만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번역나라 "바른번역"일을 맡고 부터는 회사적인 업무가 다소 늘었다. 보통 8시에 출근해서 번역도 하고, 회사업무도 본다. 종종 출판사에 들리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한다. 저녁에 강의하기도 한다. 통상 6시30분 정도면 귀가하는데 번역 일에 매달릴 때는 거의 11시 넘어야 끝나는 경우가 많다.


따: 전공이 전자공학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영어를 잘하게 되었는가?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을 잘 만났다. 선생님이 영어를 전략 과목으로 선택해서 잘만 공부해놓으면 다른 공부하기가 수월하다고 하셨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기초를 단단하게 해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따: 직장인에서 번역가가 된 이후 새롭게 생긴 꿈은? 포부는?

김: 1. 좋은 책을 번역해서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문학작품도 있다면 좋겠다.

2. 번역가의 위상을 높이는 일을 해보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번역 작업을 단순한 노동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번역도 창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출판계에서의 대우는 너무 박하다. 그래서 출판사와의 재관계설정과 독자와의 관계설정에서도 번역가의 위상을 올리는데 한몫을 담당하고 싶다.

3. 후배를 양성하고 싶다. 번역가가 될 수 있는 경로가 너무 힘들다. 그러다보니 어떻게 번역가가 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을 위해서 좋은 번역가를 양성해보고 싶다.

개인적인 꿈은 즐겁게 사는 것이다.


따: 본인이 책을 쓸 계획은 있는가?
김: 이미 책을 썼다.

따: 앗, 죄송^^ㅎㅎ
김: ‘나도 번역해볼까?’라는 제목의 책이다. 번역가로서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에게 번역가라는 것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실무적인 입장에서 기술해놓았다.


따: 독자들의 지독한 악평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 정말 어이없는 악평도 있다. 처음에는 상처도 받았으나 이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건전한 비평과 지적의 경우에는 참조한다. 다른 책들에 대한 독자 서평을 보면서 독자심리와 트렌드를 파악하기도 한다.


따: 회사 생활할 때의 어려움은 무엇이었나?
김: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다. 핸드폰 개발 업무였는데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내가 납땜까지 하면서 만든 통신기기로 통화할 수 있을 때는 마냥 신기하고 뿌듯함 마저 느껴지곤 했다.

다만 프로젝트 마감 시한이 다가올 때는 압박감이 많이 느껴졌다. 이때는 퇴근도 많이 늦어지고, 밤새는 경우도 많아서 개인 생활을 할 여력이 없었다.

당시 휴대폰 개발의 초창기로서 시행착오가 많았던 때였다. 그래서 작업에 있어서 더 힘들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다.

그러던 중 10년 후, 20년 후 내 모습을 그려보게 되었다. 지금 나보다 앞서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상사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바라보던 모습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 변화에 대한 준비를 하고 사직했는가?
김: 사실 거의 준비를 안 하고 나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라는 생각뿐이었다. 다소 대책이 없었다. 그렇게 사표를 던지고 무작정 유학 공부하다가, 사업하다가 좌충우돌하면서 실패를 경험했다.

덕분에 새로운 도전을 위한 에너지를 충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따: 만일 직장인들에게 충고를 해준다면...
김: 1) 조직에 있을 때 최대한 많이 배우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나에게도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조직에게도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2) 조직에 있는 동안 최소한의 안정성이 포근하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안주만 할 것이 아니라 조직생활을 계속해 나갈 것인지, 아니면 조직생활을 벗어나 새로운 미래를 설계해야 될지 냉정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3) 미래의 청사진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래를 위해서 준비하는 것이다. 창업도 좋고, 자기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도 좋고, 강의나 글쓰기 등도 좋다.


따: 번역가로서의 한계는 무엇인가?
김: 1권을 번역하기 위해서 몇 십 권의 관련도서를 사서 공부해야 되는 경우가 많다. 번역가 개인이 해외에서 좋은 작품을 가져오기는 쉽지 않다. 요즘 선인세가 워낙 높아진 상태여서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대개 에이전트를 이용해서 해외 작품들을 가져와야 되는데 대형 작품들은 이미 철저한 기획 하에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서 번역가로서의 역할에 한계가 있다.


따: 베스트셀러에 몰리는 현실을 어떻게 보는가?
김: 독자들을 책을 선택할 권리가 없다. 어떤 책이 좋은지 알기 너무도 어려운 현실 탓이다. 1년에서 수천, 수만 권의 책이 출간되지만 소위 베스트셀러는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뿐이다. 그러다보니 독자들이 특정 베스트셀러에 몰리는 경향성이 있다.

더 많은 홍보 채널이 확보되었으면 좋겠다.

김우열 번역작가는 독자층이 갈수록 엷어지고 있다고 걱정했다. 책 보다 흥미롭고 재미있는 새로운 매체로 독자들이 옮겨가고 있는 현실을 걱정했다. 이에 대한 대책을 걱정하면서도 독자를 비난하기보다 독자들을 끌어올 수 있는 출판계의 변혁을 꿈꾸는 그에게서 아이디 몽상가라는 이름이 어울린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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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ww.careernote.co.kr/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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