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생각(반면교사 혹은 타산지석)/(펌/ 편집) 영화번역업계 까기

‘Butter’는 ‘된장’인가 ‘버터’인가? ㅡ 영화번역의 현주소

잔인한 詩 2010. 8. 30.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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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4호] 2004년 07월 25일 (일) 김지영 기자chunchu@yonsei.ac.kr
“네, 정주영보다 돈이 많아요.”
영화 『포레스트 검프(Forrest Gump)』에서 번역된 대사의 일부다. 실제 대사에서의 인물은 ‘데이빗 크로켓’이라는 미국의 유명한 모피회사 사장이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에 의역이 이뤄진 것. 하지만 이때 시도되는 의역들은 영화 제작국과 수입국의 문화적 맥락을 총체적으로 고려하지 못해서 원작의 분위기를 깨뜨리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화여대 통·번역 대학원 박찬순 강사는 제시된 예에 관해 “지나치게 한국적인 인물 ‘정주영’은 미국영화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미국과 우리나라에서 동시에 부호의 뜻을 가질 수 있는 ‘빌 게이츠’ 정도가 더 적당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렇게 현재 수입영화에서는 두 나라의 문화적 차이를 조정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의역이 이뤄지는 경우가 드물고 그 밖에 사투리, 언어 유희와 같이 고유의 언어적 특성을 살리는 문제도 아직까지 번역의 난점으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줄거리를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었기 때문에 자막 번역에 대해 따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김슬기양(사회계열·2)처럼 대다수의 관객들은 자막에 대해서 미온적인 수용태도를 보이고 있다. 가끔 일간지에서 잘못된 영화번역의 사례를 지적하는 기사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기사에서는 사례들이 유명한 영화의 속사정을 밝히는 가쉽거리로밖에 치부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관객이나 번역작가 모두에게 있어서 영화번역의 문제점을 실질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기회가 없기 때문에 관객들은 질 좋은 번역을 ‘작품의 맥락을 매끄럽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이라고 피상적으로 인식할 따름이다. 영화의 줄거리가 무리없이 이해되는 이상 이런 피상적인 개념은 실제 관람하는 작품과 충돌하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그 순간 번역은 관객들의 관심 밖으로 벗어나게 된다.
영화번역을 가꿔나갈 수 있는 사회적 관심의 부족은 영화시장의 상업논리에서부터 시작된다. 배급사들은 원작의 수려한 번역을 원하지만, 막상 번역일 자체에 대한 대우는 보수에 있어서부터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이런 배급사들의 이중적인 태도는 번역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선행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보통 A4 용지로 백여 쪽에 달하는 작품 하나를 짧으면 1주일, 길면 2주일 동안에 번역하도록 요구한다”는 번역가 이미도씨의 말은 배급사측의 번역에 대한 인식부족을 극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또한 영화 배급사 씨네마서비스 국제팀 김태완 대리가 “작품의 흥행가능성이 클수록 번역의 감수과정이 까다롭다”라고 밝힌 것처럼 흥행성이 떨어지는 작품이 번역과정에서 소외되는 것은 상업논리로 왜곡되는 영화 번역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배급사 필름뱅크 유종윤 이사는 불완전한 번역에 대해 “각국의 언어에 능통하고 문화적 소양을 갖춘 전문인력이 부족하다”며 번역가의 자질을 큰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1년에 3백여 편의 외화가 수입되지만 전문번역가는 대여섯 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유이사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따라서 일부 유명한 번역작가들에게만 주요 영화의 번역이 몰리게 되고 이름없는 번역가들은 개인적으로 일감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번역회사에 들어가서 회사간의 경쟁으로 낮아진 번역료를 받으며 일하는 불평등함이 발생한다. 이에 대해 미디어아트연구소장 임정택 교수(문과대·독문학)는 “대다수의 번역가들이 ‘효율성’이라는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재 상황에서는 새로운 번역가가 능력을 인정받고 전문번역가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닫혀 있다”고 지적한다. 전문인력의 부족으로 번역물이 소수의 번역가에게 집중되고 이는 다시 다수의 신인번역가가 성장할 수 있는 통로를 막아 전문인력의 부족을 부추기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런 이유로 파편화된 번역가들의 상황은 질 좋은 번역에 대한 논의의 부재를 가져왔고, 이는 실제 영화의 번역이 아무 원칙없이 이뤄지는 현실로 나타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중역과 제목 번역의 문제다. 영어 이외의 언어에 대한 전문가가 부족한 현실 때문에 영어로 번역된 대본을 다시 우리말로 번역하는 관행이 원작의 묘미를 충분히 살려낼 수 없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고 있다. 또한 영화제목의 번역에 있어서도 뚜렷한 원칙이 마련돼 있지 않다. ㅅ영화 배급사의 홍보팀 ㅂ씨가 “제목에 대한 아이디어가 부족하거나 시간이 모자라는 경우에는 원제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한 것처럼 제목번역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음을 밝혔다. 실제로 『디아더스(The Others)』, 『세렌디피티(Serendipity)』, 『디스터번스(원제: Domestic Disturbance)』와 같이 무슨 뜻인지조차 알 수 없는 무분별한 원제표기는 수용자의 이해를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처사라고 할 수 있다. 번역가 이씨는 “우리말로 바꿔도 원제의 뜻을 크게 훼손하지 않는다면 우리말 번역이 수용자를 위해서 더 바람직하다”며 우리말 번역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최근 세계적으로 문화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각국의 다양한 영상물이 우리에게 쏟아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영상번역에 대한 사회적 수요도 커진 상황이다. 하지만 여전히 바람직한 기준과 틀조차도 논의되고 있지 않은 영상번역의 현 상황은 이런 요구를 수용하기에 역부족이다. 이런 상황에서 통·번역대학원은 영상번역의 가장 실질적인 문제로 거론됐던 전문인력 부족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된다.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의 박강사는 “사설학원이나 방송국의 아카데미와 같이 번역을 기술적인 측면에서만이 아닌 문화적이고 학문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려는 시도로 번역의 역할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 능력을 기를 수 있는 장이 될 수 있다”며 번역의 자질에 대한 총체적인 교육을 강조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번역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영화시장 안에서 실제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디어아트연구소 우미성 전문연구원은 “무조건 일선의 영화산업에 대해 원론적인 비판으로 일관해왔던 기존의 태도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며 실질적 대안으로서의 소통을 강조했다. 작품을 보고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관객의 관심은 상업논리에 묶여 있는 영화번역 시장에 큰 자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인터넷 동호회를 통해서 관객과 번역가가 번역된 대본을 비평하며 논의를 이끌어가는 예에서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이렇게 번역의 주체인 번역가와 번역물의 수용자인 관객이 이뤄가는 역동적인 소통은 상업논리에 휘둘려서 제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영화번역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기본적인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http://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7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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