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생각(반면교사 혹은 타산지석)/(펌/ 편집) 영상번역

번역은 원작의 느낌을 디테일하게 재현하는 "작업"

잔인한 詩 2010. 8. 29.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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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름  : 송 지 현

 

      경   력

                 <위기의 주부들 시즌1~5>

                 <스타워즈에피소드 1, 2>

                 <트렌스포머>

                 <슬럼독밀리어네어>

                 <어거스트 러쉬> 등

 

 

번역은 서로 다른 문화와 문화를 잇는, 교류와 소통 그리고 최첨단의 정보를 전파하는 첨병 역할을 수행한다. 그만큼 용어 하나 하나에 번역자의 노력과 고뇌가 숨어있으며, 그 책임감 또한 막중하다. 더구나 외국과의 교류도 활발해지고 각종 미디어를 통해 외국 영상물이 넘쳐나는 요즘, 영상번역작가가 지니는 무게감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송지현 영상번역작가는 외국 영상물의 홍수 속에서 한국에 몇 되지 않는 더빙 전문작가로 굵직한 작품들을 맡아 번역을 진행해 오고 있다. 그가 들려주는 영상번역의 생생한 이야기들은 오늘날 한국어 번역의 의미를 되새긴다.

 

흔히 영상번역작가는 ‘더빙’과 ‘자막’ 작가로 나뉜다. 그리고 매체의 성격에 따라 번역작업도 그 성격이 조금씩 다르다. 공중파는 대부분의 경우 더빙을 원칙으로 한다. 영상물 원 제작자가 이 작품은 더빙에 제한을 두지 않는 이상 거의 대부분 성우들을 기용해 한국어로 더빙한다. 케이블과 극장판은 자막을 위주로 하는데, 케이블은 대개 한 페이지(화면) 당 글자가 26자가 들어가고, 극장판은 14자다. 더빙판을 만드는 어린이 물을 제외하고는 이러한 글자수 제한에 맞춰 번역한다.

 

8년간 집안 살림만 했던 송지현 작가에게 영상번역 일은 그가 세상을 만나는 새로운 날개였다.

 

 

영상번역작가가 되기까지

 

송지현 작가는 그중에서도 공중파의 외화나 다큐멘타리 등 한국어 더빙을 위한 번역을 주로 담당한다. 때문에 영어 영상물의 텍스트를 한국어로 옮기는 일뿐 아니라, 한국어의 구어체 느낌도 살려야 하는 조금은 까다로운 작업을 해결해야 한다.

 

“더빙은 기본적으로 인물의 대사를 번역하는 것 외에, 일일이 대사와 영상이 맞게 성우들의 입 길이를 다 맞춰야 합니다. 제가 영상물을 열 번 이상 보는 이유도, 대본 중간중간 호흡의 박자부터, 웃음까지 성우들이 틀리지 않도록 토시 하나하나까지 꼼꼼히 살펴야 하기 때문이죠.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똑같은 뜻이라 하더라도 말의 길이는 제 각각이기 때문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해요.”

 

     

 

그래서 더빙은 영상번역작가라 하더라도 많은 경력과 노하우가 필수다. 송지현 작가가 처음 번역작가를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구성작가가 따로 있는 <동물의 왕국>을 시작으로 1여 년간 훈련을 거친 후에 장편 영상물을 맡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지금은 더빙할 영상물이 많지 않아 이마저 힘든 상황. 일이 고되다 보니, 공중파에 남아있는 영상번역작가들도 이제 손에 꼽을 정도다.

 

“요즘은 케이블 채널도 많이 생기고 영상번역자가들에 대한 수요도 많아요. 하지만 정작 더빙할 수 있는 작가들은 부족한 실정입니다. 특히 영어 쪽은 더하죠. 물론 영어의 수준이 상당히 높아져 자막 제작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만, 정작 자막 자체의 질이 높은 사람은 드뭅니다. 다시 말해 영어를 잘한다 뿐이지 번역을 잘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번역작가라면 어렵고 까다로운 말을 부여잡고 최대한 어울리는 한국말을 찾고자 하는 절실함이 필요하다. 틈틈이 방송 3사에서 운영하는 번역작가 교육과정 중 ‘더빙’ 과정을 맡아 교육생들을 지도하며 송지현 작가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작품에 대한 정확한 이해다.

 

송지현 작가는 피로가 누적돼 몸살로 앓아 있는 와중에도 번역 일은 놓지 않을 정도로 열정을 갖고 있다.

 

“뭐랄까? 깊이가 없다고 할까요? 단순한 외국어 구절을 번역하는 것이야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한 작품을 번역하는 과정에서는 행간의 의미를 알아야 전체적인 밑그림 속에서 자연스러운 번역이 이뤄지는데, 요즘 학생들은 작품 혹은 텍스트에 대한 이해가 별로 없어요. 그러니 오역에 대한 책임감도 별로 크지 않죠. 시청자들의 반응이 실시간 쏟아지는 세상에서 오역은 번역작가에게 치명적인 실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돼요.”

 

그렇기에 번역작가에게 작품과 관련된 조사는 필수적인 항목이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관련 논문부터 시작해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되는 사전 자료조사가 뒤따라야 자신도 모르게 그냥 지날 칠 수 있는 오역을 줄일 수 있다.

 

“영상번역작가로 처음 맡은 장편이 <내셔널지오그래픽> <BBC다큐멘타리>이었어요. 황당하게도 우주, 로봇, 바이러스, 기타 생물 등 생전 처음 들어보는 온갖 전문용어들이 난무하는 작품이었죠. 감당이 안되니, 무턱대고 대학과 관련 연구소에 전화해 용어에 대해 설명을 해달라고 애원했고, 때론 대본을 들고 찾아가는 것도 수차례였죠. 지금 생각해 보면 얼굴이 철면피였어요(웃음). 사실 영역을 다루는 다큐멘타리다보니 많이 예민했던 것 같아요. 가령 알프스의 구조대원에 대한 다큐멘터리에서 원래 문장은 ‘산에서 길을 잃고 가장 하지 말아야 될 일은 알코올 섭취’였는데 ‘반드시 섭취해야 하는 것이 알코올이다’라고 잘못 번역했다면, 이 같은 경우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거잖아요.”

 

     

 

 

영상번역작가로 산다는 것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한편, 방송스케줄에 맞춰야 하는 이중고가 따르는 영상번역작가. 하루 종일 때로는 며칠 밤을 TV와 함께 씨름하는 작업은 정신적 스트레스와 체력적인 고갈의 한계치에 다다르게 하는 고독한 투쟁이라 송지현 작가는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번역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번역 시작하고 3년은 잠을 제대로 자본 적이 없어요. 서너 달에 한 번씩은 몸살을 앓았고 그러면서도 악으로 손에서 일은 놓지 않았어요. 결혼 후 8년 만에 얻은 남다른 직업인데, 여기서 포기하면 앞으로 평생 직업을 갖지 못한다고 생각했죠. 더구나 작품을 끝낼 때 마다 밀려오는 희열과 성취감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어요. 오죽하면 휴가를 가서도 가족들이 잠든 새벽에 몰래 호텔 라운지에 나와서 일을 했겠어요(웃음).”

 

언제나 가족에게는 미안하다는 송지현 작가는 이 같은 필사적인 노력 덕분인지 <위기의 주부들>을 번역하며 세상에 그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내로라하는 성우들과 완벽한 제작팀이 함께한 가운데, 일주일에 50분짜리 영상물 두 편의 더빙 대본을 작성하는 살인적인 스케줄이었지만 그의 말처럼 용케도 그 많은 분량의 작업을 해냈다.

 

“<위기의 주부들>은 방송되기 전에 이미 마니아 층을 중심으로 온라인 팬 카페가 형성될 정도로 암암리에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었고, 인터넷상에 대사 원문까지 돌고 있던 상황이라 심적 부담도 함께 짊어지고 가야 했어요. 때문에 중간에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수백 번도 더 했죠. 정말 거짓말 조금 보태서 내가 죽어야 이 일이 끝나지 않을까 할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던 작품이었어요.”

 

<위기의 주부들>이 5시즌까지 달려오며 송 작가에게 큰 자부심과 성취감을 줬다면 <스타워즈 에피소드 1, 2>는 그의 새로운 도전을 통해 영상번역작가로서 역량을 떨친 작품이다. 송 작가는 더빙과정에서 이전과 다르게 극중 인물인 ‘요다’와 ‘자자빙크스’의 독특한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과감한 결정을 했다고 한다.

 

     

 

“ ‘요다’는 동양 사상의 세례를 받은 지도자로서 대사가 대부분 운문이었어요. 또한 ‘자자빙크스’라는 외계 생명체는 보통의 미국식 영어가 아니라 자메이카식 영어를 사용했죠. 이 두 캐릭터의 특성을 한국어로 어떻게 살릴 수 있을 지가 문제였어요. 타 방송사의 번역은 대부분 이 같은 특징을 살리지 않고 넘어갔더군요. 그래서 거슬리지 않는 선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로 했어요. 가령 자자빙크스의 경우는 한국말의 받침을 빼고 발음하는 식으로 그 인물을 표현해 봤죠. 욕이나 먹지 않으면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일반 시청자만이 아니라 마니아 층의 극찬이 이어져서 뿌듯했어요.”

 

이러한 새로운 시도가 가능한 것은 송지현 작가만의 번역철학에 덕분이다. 그는 언제나 텍스트에 충실하게 번역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그리고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으면 알 때까지 자료를 끊임없이 찾아 원작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최선 방법을 고민한다. 이러한 성실함이 번역작품에도 여실히 묻어 나는 것이다.

 

TV와 얼굴을 맞대고 사투를 벌이는 번역작가의 일은 고독한 투쟁이다.

한 작품의 번역을 끝내는 순간 그 짜릿함. 매번 겪는 일이지만 언제나 그에게는 새롭다.

 

“가끔 영상번역작가의 자질에 대한 질문을 받고는 하는데요. 제일도 제이도 제삼도 성실인 것 같아요. 방송이 정해진 날까지 책임감을 갖고 완벽한 번역을 위해 노력해야죠. 좀더 절실하게. 단순히 밥벌이나 취미로 여긴다면 곧 실망하고 포기할거예요. 대신 번역에 대한 절실함, 끈기가 있다면 충분히 높은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직업이예요”

 

덧붙여 송지현 작가는 한국어에 대한 관심을 많은 번역작가들이 갖길 바란다. 그간 번역작가들이 무분별하게 남용했던 번역 투 문장을 지양해 시청자들이 보다 쉽고 정확하게 원작을 감상할 수 있도록 그는 앞으로도 꾸준히 노력할 것이다.

 

 

글 김성재 기자(media@cgland.com)

 

출처 : http://www.kocca.or.kr/gallery/people/1302865_137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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